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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전태일문학상 수상자들이 본 사회 모순·노동 현장의 분노 “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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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제27회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김철, 소설 부문 신수담, 생활기록문 부문 이득신 수상자(왼쪽부터)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기 전 경희궁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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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의 삶은 곧 글이 된다. 한국 노동운동의 전설과도 같은 전태일이 남긴 일기가 그랬다. 삶의 고단함과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적어내린 그의 일기는 한 시대의 초상이었다.

제27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노동현장에서 느낀 슬픔과 분노, 사회구조의 모순을 꾹꾹 눌러쓴 작품들은 ‘전태일문학상’이란 이름에 맞춤했다. 전태일재단과 경향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제27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들을 지난 11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단편소설 ‘딱지란 무엇인가’를 쓴 신수담, 시 ‘똑같은 손’ 등을 쓴 김철(29), 생활기록문 ‘살아남은 자들의 도시’를 쓴 이득신(50)이 그 주인공들이다. 김별아·김종광 소설가가 소설 부문, 김해자·맹문재 시인이 시 부문, 박일환·임성용 작가가 생활기록문 부문 심사를 맡았다. 수상작은 제14회 전태일청소년문학상 수상작과 함께 책으로 출간된다.

■ 신수담 콜센터 감정노동 그려

콜센터 ‘을 대 을 갈등’ 그린 소설

경력단절 여성의 현실 몸소 겪어

실제 콜센터 근무 경험 담긴 작품


단편소설 ‘딱지란 무엇인가’는 구청 주차민원콜센터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을과 을의 갈등’을 생생하고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소설에서 주차민원콜센터는 콜센터 가운데서도 가장 험악한 전화가 많이 오는 곳으로 ‘하수종말 처리장’이라 불린다. 신씨는 실제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아이가 큰 다음 이런저런 비정규직 일자리를 경험한 신씨는 경력단절과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여성의 노동 현실을 몸소 체험했다.

“전업주부로 아이를 키우면서 동네 대여점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대여점 책을 전부 다 읽어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었죠. 이제 써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이가 크고 나서 지역 주간지 리포터로 일하면서 그동안 쓰고 싶었던 소설이 다시 생각났어요.”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신씨는 “세상을 너무 몰랐다”. 경력단절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고, 그중에 콜센터도 있었다. 신씨는 “콜센터 중에서도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게 주차민원콜센터다. 주차딱지를 받는 사람들 중 배달부나 노점상이 많은데 과태료를 내면 하루 수입을 날리는 것이다보니 전화로 분노를 그대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콜센터 직원에게 전화해 “바퀴벌레”라며 욕설을 늘어놓는 남자는 알고보니 평소에 호감을 품고 있던 과일 노점을 하는 남자였다. 여자는 다정한 남자와 전화 속 거친 욕설을 뱉는 남자의 모습 사이에 혼란을 느낀다. 또 콜센터와 주차단속반 사이의 갈등도 나온다. ‘을과 을의 갈등’에 대해 신씨는 “갑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일 수도 있고 시스템을 장악한 누군가일 수도 있는데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며 “전태일 열사가 살던 시대엔 투쟁 대상이 명확했는데 요즘은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득신 ‘삼성맨’에서 ‘하청노동자’로

대기업 간부 출신 건설 노동자

양극단의 경험에서 나온 소설

노동 현장 다양한 목소리 담겨


이득신의 생활기록문 ‘살아남은 자들의 도시’는 노동현장에서 적어내린 일기다.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 20년간 삼성에 몸담았던 이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표를 쓴다. 대기업 간부 출신을 반기는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 인터넷 채용 공고를 보고 ‘초보자 환영’이란 말에 건설현장직에 지원한다. 하필 그곳이 삼성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이었다. ‘대기업 사원’에서 ‘하청 건설노동자’로 양극단을 다 경험한 이씨가 느낀 것들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대형 공장에 환기 시설을 갖추는 ‘덕트공’으로 일했어요. 10㎏ 정도의 안전장비를 갖추고 이동해야 하죠. 현장 관리자들이 저를 두고 언제 그만두나 내기를 하기도 했죠.”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고 답했지만 100일을 버텼다. 그의 손가락엔 새로 자란 손톱 흔적이 있었는데 “일하다 다친 것”이라며 “산재처리하면 서로가 곤란하니 집에서 다친 걸로 해서 병원에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장에서 자살한 노동자가 있었는데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 협력사에선 가정 문제라는 소문을 퍼뜨렸다”고 덧붙였다.

그의 기록엔 노동현장의 열악한 현실과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이 생생하다. 20대 대학생부터 시간강사만 전전하다 환갑을 목전에 두고 ‘노가다’에 뛰어든 근이 형님까지 ‘청년 실업자’부터 ‘중년 실업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준다.

지금은 다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씨는 퇴근 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글을 쓴다. 대기업 신입사원부터 은퇴자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대기업 사람들’을 테마로 한 책을 쓰고 있다.

■ 김철 ‘글 쓰는 시간, 진정 내가 되는 시간’

‘조각만 만지다 전체를 잃어버리는’

소모품 같은 하청노동자들 노래

백화점 하청 판매사원 8년째 근무


시 당선작 ‘똑같은 손’은 “조각만 만지다 전체를 잃어버리는/ 똑같은 손들의 저 아득한/ 하청의 하청들”이라며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노동구조와 소모품처럼 쓰이는 노동자들을 노래한다. 김씨 자신 또한 하청노동자다.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8년째 일하고 있는 그는 “백화점이란 공간에 맞추기 위해선 내가 실제 어떤 사람인지를 내려놔야 한다. 백화점이란 원청이 하청에 갑질을 하는 경우도 목격하지만 아무도 제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20대인 그의 시에 담긴 노동의 현장은 핍진하면서도 풍부한 이미지를 통해 그려진다. 그 역시 노동자인 시인이기 때문이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모습을 ‘반쯤 꺾여 진 바늘’(‘바늘’)로 그리고, 여름의 초록나무들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이미지를 연상(‘노동하는 여름’)하기도 한다.

공연을 하고 싶어 무작정 연극무대 스태프로 일했던 그는 생계를 위해 백화점에 취직했다 뒤늦게 공부를 하고 싶어 현재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오후 8시 퇴근 후 연극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새벽까지 메모를 하며 글을 쓴다. 그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다. 쓰고 있을 때의 기분이 일할 때보다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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