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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혼자가 불안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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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한겨레

김선호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쌤~ 이번 현장체험학습 갈 때 버스 자리는 어떻게 정해요?”

최근 5~6년 전부터 등장한 질문이다. 즐거운 현장체험학습 날(소풍날) 버스에서 함께 앉아 가는 친구가 누구로 결정될지 고민하는 아이들이 주로 물어본다. 내가 싫어하는 아이와 앉게 되는 건 싫고, 혹시라도 혼자 앉아 가는 건 두렵기까지 하고, 이제 소풍날은 기대감이 아닌 불안으로 출발한다.

10여 년 전,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은 없었다. 그냥 즐겁게 버스 타고, 그 순간 마주하는 친구와 함께 앉았다. 과자도 나눠 먹고 떠들다 보면 도착해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다르다. 버스 타기 일주일 전부터 누구와 같이 앉을지 심리전이 흐른다. 나와 친하다고 생각한 아이가 다른 친구와 버스에 앉으면 암흑의 배신감이 흐른다. 그리고 슬슬 결별 작업에 들어간다. 혼자라도 앉게 되는 날이면 그날의 현장체험학습은 ‘우울’ 모드로 변환된다.

이런 일들을 막고자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하기도 하는데, 이땐 이미 같이 앉기로 결정한 아이들의 원성을 들어야 한다. 쉬운 게 없다. 결국 어떤 걸 선택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 아이들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는다. “현장체험학습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소풍에서 버스가 차지하는 시간은 왕복 2시간, 남은 5시간은 친한 친구 혹은 원하는 대로 그룹 지어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버스 시간마저도 반드시 단짝 친구와 앉아야 하고, 혼자 앉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불안이 높은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쉬는 시간 10분, 5분도 ‘단짝’과 떨어져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어쩌다 혼자 있게 되면 불안한 좀비처럼 서성인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 관해 이렇게 표현한다. “불안은 현대 야망의 하녀다.” 하녀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한다. 이렇게 결정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자신의 존재감에 관해 잊어버린다.

아이들 입장에서 ‘단짝’을 바꿔 표현하면 ‘내 편’이다. 내 편이 있어야 안전하다 느끼고,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여 혼자 있게 되면, 그것만으로 존재감을 상실하고 이 상태가 영원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우리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거나 소풍 가는 버스에서 ‘단짝’이 없을 때 불안, 화, 짜증을 낸다면, 아직 자존감 형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부모로서 ‘우리 아이가 버스에서 혼자 앉아 가면 어떻게 하지? 단짝 친구와 함께 앉아 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이 든다면, 부모로서의 존재감이 흔들린다는 표시다. 낯선 친구와 마주할 수 있어야 하고, 친한 친구와도 거리감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며, 혼자 있는 시간도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하녀’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느끼며 주체적인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어른이 되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을 불안한 하녀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누릴 수준까지 안 된다면, 견딜 수 있게라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는 자존감 높은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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