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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만물상] '깜깜이' 南北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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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남북이 축구에서 처음 맞붙은 건 1976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대회 준결승이었다. 경기 전 남북 단장이 "외국에서 추태 보이지 말자"고 약속한 덕분인지 경고나 퇴장 없이 끝났다. 결과는 북한의 1대0 승리였다. 2년 뒤 같은 대회에서 설욕의 기회가 왔다. 그러나 그 무렵 북이 판 '제3 땅굴'이 발견돼 서울에서 '김일성 화형식'이 열렸다. 북한팀 주장은 우리 주장의 악수도 거부했다. 당시 주장이 박항서 감독이다. 북 선수 4명이 옐로카드, 1명이 레드카드를 받은 거친 경기였다. 승부차기에서 한국이 6대5로 이겼다.

▶북은 2010년 월드컵 예선 당시 평양 남북 대결을 앞두고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가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결국 장소를 중국으로 옮겨야 했다. 우리 대표팀이 A매치에서 북에 패한 건 1990년 평양 통일축구 경기가 유일하다. 선제골을 넣었던 김주성은 "주심이 북한 심판이었는데 1대1이던 후반 막판에 추가 시간을 7~8분 이어갔다"며 "북이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넣자 경기가 끝났다"고 했다. 친선경기라 해도 북 축구가 평양에서 지는 꼴은 보기 싫었던 것이다. 2005년 북한과 이란의 월드컵 평양 예선 때는 북이 0대2로 끌려가자 관중이 의자와 빈 병을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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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2010년 월드컵 본선에서 최강 브라질과 첫 경기를 했다. 선전한 끝에 1대2로 졌다. 자신감을 얻은 북은 두 번째 포르투갈전을 북 전역에 처음 생중계했는데 0대7로 대패했다. 한 탈북민은 "북한과 세계의 격차를 모든 주민이 절감한 경기"라고 했다.

▶내일 평양에서 열리는 월드컵 예선 남북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취재진도 응원단도 한 명 없이 뛰어야 한다. TV 생중계 역시 불투명하다. 북이 선수단을 제외한 우리 측 인원의 방북을 아무런 설명 없이 불허했기 때문이다. 2011년 평양에서 일본과 대결한 월드컵 예선을 생중계했던 북이 지금 우리한테는 냉담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이 축구장이었다.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규모 응원단을 보낸 뒤 '남북 쇼'를 시작했다. 스포츠를 정치 도구와 선동의 수단으로 써온 것이다. 우리 대표팀의 나 홀로 평양행은 북이 올 초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상종 않겠다'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운운할 때부터 예견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얼마 전에도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 개최"를 강조했다. 남북 축구 한 경기도 어려운데 무슨 올림픽 공동 개최란 말인가.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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