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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글로컬 라이프] 달리·워홀·웨민쥔·강형구… 쇼핑몰의 미술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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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주중(駐中) 북한대사관을 비롯해 옛 공산권 국가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베이징 둥다차오(東大橋)를 걷다 보면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 건물을 볼 수 있다. 베이징 팡차오디(芳草地) 쇼핑센터다. 전체 면적 5만㎡에 점포 100여 개가 입점해 있는, 중국에서는 큰 축에 들지 못하는 상가다. 그런데도 중국 지인들은 주말에 놀러 갈 만한 곳으로 이곳을 추천했다.

토요일이던 지난달 28일 쇼핑몰을 찾았을 때 건물 앞에서 기자를 맞은 것은 스페인 출신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의 '돌고래를 탄 사람' 조각이었다. 쇼핑몰 내부로 들어가면 한국 작가 강형구가 그린 7m가 넘는 '관우'가 걸려 있다.〈사진〉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캐릭터로 유명한 중국 현대 작가 웨민쥔(岳敏君), 미국 유명 팝아트 작가인 앤디 워홀의 작품도 보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236m짜리 실내 다리 위에는 대형 상어 조각상이 매달려 있다. 쇼핑몰의 최고 인기 장소다. 쇼핑몰 안내 직원은 "상어 앞에서 사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많아 저녁까지 붐빈다"고 했다.

중국은 스타벅스 커피 한 잔도 배달시켜 마시는 온라인 쇼핑의 천국이다. 백화점·쇼핑몰 같은 오프라인 점포들에는 '죽음의 시장'인 셈이다. 중국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중국의 상품 소매업은 33조8000억위안(약 5679조원)으로 전년 대비 8.9% 성장했지만 백화점 매출은 1.9% 성장에 그쳤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1990년 이후 출생자들인 '주링허우(九零後)'들의 온라인 쇼핑 선호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1953년 설립된 베이징 톈차오(天橋)백화점은 최근 경매에 나왔지만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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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차오푸(僑福)그룹이 2012년 세운 팡차오디 쇼핑몰은 처음부터 '랜드마크'를 지향했다. 문화를 중시하는 주링허우를 겨냥해 동·서양 예술 작품을 전면에 배치하고, 고소득층 소비자를 겨냥해 테슬라(전기차) 전시장, 롤렉스 매장 등을 입점시켰다. 한국에서도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사례는 많다. 하지만 팡차오디는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에스컬레이터 옆, 통로 한가운데 설치된 유명 작품을 보고 사진을 찍느라 정작 어떤 매장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이날도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매장 밖에서 전시 작품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베이징 시민인 장청씨는 "생필품은 징둥(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지만 여기 오면 예술품도 보고 앞으로 사고 싶은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여행 안내서인 '론리플래닛'은 이곳을 '예술로 가득한 원더랜드'라고 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예술·디자인과 쇼핑몰을 결합한 곳이 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쓰촨(四川)성 청두와 베이징 도심에 들어선 쇼핑몰인 타이구리(太古里)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이 찾고 있다. 청두 타이구리의 경우 청두 관광 필수 코스가 된 나머지 중국 인터넷 매체인 왕이(網易)는 "타이구리만 안다고 청두를 아는 것은 아니다"라는 기사까지 쓸 정도다. 홍콩 뉴월드그룹이 예술 전시와 쇼핑센터를 결합해 만든 'K11'도 상하이를 비롯해 중국 전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팡차오디의 실험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비상장 기업이라 수익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예술을 좋아하고 중국의 '유통 실험'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찾아야 할 관광지인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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