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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NGO 발언대]‘비정상’ 편견 깨져야 지속 가능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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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을 나가든 또래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하는 얘기가 있다. 전에는 주제가 취업, 결혼, 독립 정도였는데, 이미 취업과 결혼의 꿈을 이룬 건지 아니면 둘 다 아예 안 하기로 선택한 건지 저 중 아직까지 유효한 주제는 독립뿐이다. 요즘엔 한 가지 새로운 주제가 추가됐다. ‘유튜브’다. 퇴사와 유튜브 데뷔가 직장인의 2대 허언이라는 사진이 웃긴 자료로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어떤 친구들을 만나건 유튜브 하면 삶이 좀 재밌어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 헤어진다.

경향신문

물론 그 누구도 유튜버가 되겠다고 쉽게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는다. 100명이 구독할지, 100만명이 구독할지 모르는 유튜브는 안정만을 위해 살아온 우리에게 너무 큰 도전이다. 웬만한 각오 없이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 쉬이 이별을 고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모여 앉아 유튜버의 삶을 동경하는 기저에는 ‘저런 삶도 나쁘지 않구나’라는 안심이 있지 않을까. 큰 명예나 성공은 없지만 시대착오적인 말을 하는 직장 상사도, 나를 부품으로 쓰고 버리는 회사도 없는 곳. 내 소소한 일상이 곧 밥벌이가 되는 곳. 전에 없던 새로운 삶의 ‘견본’을 본 거다.

견본이 없는 꿈을 꾸기는 막막하다. 수많은 성공적 견본들 앞에서 나 혼자 새로운 삶의 모양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제도 안의 삶에 몰두하는 건지도 모른다. 입시가 끝났으니 취업, 연애의 목표는 결혼 같은, 무엇을 해야 제 나이에 버젓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 보여주는 통상적 지표들 말이다. 내가 미디어로 만난 정상의 삶 밖은 언제나 실패한 인생이었다. 입시 재수, 취업 삼수, 노처녀/총각. 어떻게든 성공한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온 단어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어떤 삶을 정상으로 간주한 채 그 밖의 삶을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는 위의 단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청년정책들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직장이 없는 청년들에게 고용되라 채찍질하는 고용정책, 실업을 선택한 노동자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안전망, 출산하지 않는 부부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출산정책 등. 그러나 이 삶이 정말 비정상인가. 정책은 자발적으로 ‘비정상’의 삶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당신 삶의 가치는 무엇이냐 묻기도 전에 “그 논의는 아직 이르다”고 제지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삶을 제도 안으로 다시 끌어들여 놓으려는 정책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현재의 일상이 더 풍요로워지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더 다양한 삶의 견본을 보고 싶다. 이야기되지 않는 삶은 사회로부터 지워질 수밖에 없다. 내 삶이 특이해서 나만 겪는 줄 알았던 고민은 여러 명이 이야기하면 사회적 문제가 된다. 얼마 전 서울시가 내놓은 1인 가구 지원정책은 1인 가구 간 교류와 관계망 형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년 전 10%도 되지 않았던 1인 가구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삶의 형태가 되었기에, 1인 가구를 통계에서 없애는 정책은 무용하게 된 것이다.

최연소 시험 합격 수기보다 이런 브이로그가 더 보고 싶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무기력하지 않은 18세, 처음 취업하는 30세,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40세. 이렇게 다양한 삶이 숨 쉬고 있으니, 비정상으로 만들지 말라. 그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다.

조희원 |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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