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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9개월간 3만장 읽으며 더 좋은 말 고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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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집 펴낸 SKT 민혜진·이민정씨

“한때 ‘맞춤법충’ 얘기도 들었지만

이젠 사내외서 고맙다고해 뿌듯”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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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간 3만장이 넘는 종이를 읽었다. 홈페이지와 요금안내서, 고객센터 안내문구에 쓰이는 통신용어 300여개를 쉬운 단어로 바꿨다. ‘난쟁이’, ‘살색’ 등 광고에 쓰이던 소수자 차별 표현을 없앴다. 바뀐 사례를 모아보니 163페이지짜리 책 한 권이 뚝딱 만들어졌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의 언어표현 관리조직 ‘커뮤니케이션디자인팀’ 얘기다.

“고정관념이 담긴 표현이 아닐까, 더 읽기 쉽게 쓸 수는 없을까 매일 고민해요. 팀원 7명이 단어 하나를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때도 있다니까요.” 8일 서울 중구 에스케이텔레콤 본사에서 <한겨레>와 만난 민혜진 팀장과 이민정 매니저는 팀 업무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해 8월 설립된 커뮤니케이션디자인팀은 비정기 조직이었던 `고객언어연구소'를 흡수해 통신용어 연구를 정규 업무로 만들었다. 웹사이트·홍보영상·캠페인 등 에스케이텔레콤이 소비자에게 전하는 모든 문구를 사전 검토하고 더 나은 표현을 고안한다. 커뮤니케이션디자인팀원 7명 가운데 6명은 방송작가와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대안 찾기였다. “기존에 쓰던 말이 어려운 건 알겠는데 어떤 말로 바꿀지는 모르겠더라고요. 고친 단어가 너무 길거나 어색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고요. 보고서를 찾아 읽고 전문가 자문을 받아가면서 겨우 고쳤죠.” 이 매니저의 말이다.

어려운 통신용어는 국립국어원에 대체어 목록을 가져가 자문을 받았고 간단한 내용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에 추가된 ‘우리말365’에 물어보거나 국립국어원 ‘다듬은 말’ 서비스를 썼다. 인권과 관련된 주제를 다룰 땐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를 읽으며 공부했다. 두 단어 가운데 어떤 걸 선택할지 애매할 땐 소비자들에게 선호도 조사를 받기도 했다.

관성대로 일하려는 다른 팀과 부딪힐 때도 있었다. “외래어표기법상 렌탈이 아니라 렌털”이라고 바로잡으면 “그냥 씁시다”라고 대꾸했고 “럭키 찬스가 아니라 행운의 선물”이라 하면 “영어가 더 세련된 느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내 일부 직원들이 저희 팀을 ‘맞춤법충’, ‘띄어쓰기충’이라 불렀더라고요. 대안을 제시하면 ‘너희 팀이 한글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이런 조롱 섞인 답도 듣고요.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돼요.” 민 팀장은 “이미 사회는 소수자 비하 표현을 찾고 걸러내면서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노력을 알아주는 이들도 있다. 대체어를 알려주면 “바뀐 단어가 훨씬 좋다”는 쪽지와 메일이 날아오고 사내 감사편지제도를 통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실무자인 이 매니저는 많아야 1년에 3∼4건 받는 사내 감사편지를 하루에 3건씩 받는 일도 있다고 한다. 다른 통신사가 “좋은 일 해 줘서 고맙다”며 순화어 목록을 달라고 부탁하거나 인사팀이 교육 영상을 참고자료로 가져가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디자인팀의 목표는 에스케이텔레콤만의 ‘쓰기 쉬운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요즘 아이티 기업들이 독특한 서체로 개성을 알리잖아요. 에스케이텔레콤도 우리만의 차별화된 표현을 만들어 알리고 싶어요. 소비자들이 쉬운 통신용어를 보면 에스케이텔레콤이 만든 말이구나, 하고 떠올릴 수 있게요.” 민 팀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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