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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27억명이 '저커버그 화폐' 쓰면… 쩐의 법칙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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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를 2020년 하반기에 출시하겠다. 물론 각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은 한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페이스북이 만든 리브라협회의 버트런드 페레즈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프랑스 경제일간지 레제코에 밝힌 말이다. 페이스북은 그전까지 미국 정부의 가상 화폐 리브라 출시 반대에 "내년 출시를 유보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번복한 셈이다.

조선비즈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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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는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돈을 보낼 수 있는 가상 화폐다. 리브라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수수료 부담 없이 송금과 결제가 가능한 혁신적인 결제 플랫폼이라는 기대와 달러와 같은 기존 화폐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다. 미국 의회는 지난 7월 페이스북의 리브라 개발 책임자를 불러 청문회까지 열었고, 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국도 반대를 공식화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해 4000종이 넘는 가상 화폐가 등장했으나, 이렇게 논란이 커진 것은 리브라가 처음이다.

27억명 쓰는 가상 화폐 등장 초읽기

페이스북은 지난 6월 리브라 출시 계획을 밝히면서 "사진을 전송하듯 결제와 송금도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리브라는 페이스북 이용자라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달러와 같은 실제 화폐로 리브라를 구입해 페이스북 메신저의 전자지갑 '캘리브라'에 저장한 뒤 클릭 몇 번으로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메신저에 등록한 지인에게 가상 화폐를 보낼 수도 있다. 카카오톡에서 카카오페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송금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식당·마트 등에서 결제할 때에는 메신저 앱에 뜨는 지불 코드를 스캔해 지불할 수 있다. 실제 돈처럼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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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가 주목받는 이유는 27억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사용자 때문이다. 현재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단일 통화는 15억명이 사용하는 중국 위안화다. 만약 리브라 출시를 준비하는 기업·단체 모임인 '리브라협회'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의 고객까지 합치면 예상되는 리브라 이용자 규모는 더 커진다. 우버(차량공유), 스포티파이(음악스트리밍), 이베이(전자상거래) 등의 기업 서비스도 리브라로 결제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금융권에서는 "리브라의 등장으로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지위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리브라만으로 모든 생활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달러나 유로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리브라의 성공은 은행·핀테크 업체 등 기존 금융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선 리브라가 국경 없이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돈세탁이나 테러 단체 자금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 측은 최근 "어떤 국가 통화와도 경쟁할 의도가 없으며 각국 정부와 협의를 거치겠다"고 하면서도 의지를 꺾지는 않았다. 원래 예정했던 출시 시점을 내년 상반기에서 반년가량 늦췄을 뿐이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7월 청문회 직후 열린 페이스북 콘퍼런스콜에서 "리브라 출시가 얼마나 오래 걸리든 최선책을 알아내는 접근법을 택하겠다"며 출시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유럽 정치권에 로비 총력전

페이스북은 리브라 출시를 계기로 다양한 금융 사업을 펼치는 '글로벌 결제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리브라 개발 참여 기업이 내는 예치금과 전 세계 수십억명이 지불할 리브라 구입비만 수십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페이스북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 수익의 성장세가 최근 들어 둔화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페이스북은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각국 정치권·금융권과 접촉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저커버그 CEO는 지난 19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리브라 출시 문제를 꺼냈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국가 주도로 가상 화폐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 리브라 허가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자국 기업인 페이스북을 규제하는 사이 중국에 디지털 화폐 패권을 뺏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축제인 11월 11일 '광군제'에 맞춰 17조원 규모의 독자 가상 화폐 'CBDC'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발행 예정인 리브라보다 1년 정도 앞서는 것이다. 이미 중국 공상은행·건설은행 등 은행권과 알리바바·텐센트 등 IT(정보기술) 기업이 유통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데이비드 마커스 캘리브라(페이스북의 가상 화폐 자회사) 대표는 지난 7월 미 청문회에서 "(리브라를 출시하려는)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가로막으면 다른 곳(중국)이 먼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리브라 도입이 좌초될 경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리브라, 비트코인과 다른 방식… 오르락내리락 변동성 적어]

'리브라'는 가상 화폐 발행과 관리 방식이 비트코인과 다르다. 가상 화폐의 대표로 여겨지는 비트코인은 채굴(컴퓨터에서 복잡한 암호를 풀면 그 대가로 가상 화폐를 지급하는 것)을 통해 손에 넣을 수 있다.

반면 리브라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리브라 개발 기업들의 모임인 '리브라협회'에서 가상 화폐를 발행하고, 거래를 관리한다. 사용자는 달러·유로 등 실제 화폐를 주고 리브라를 구입해야 한다. 페이스북은 달러를 준비금으로 입금한 뒤 그에 해당하는 일정량의 리브라를 발행한다. 다른 가상 화폐의 약점인 심한 가격 변동성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다. 달러·유로와 같은 안정적인 실물 자산과 환율을 연동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널뛰기할 우려가 거의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리브라가 소수 기업이 발행·관리를 독점하기 때문에 '탈(脫)중앙화'를 기치로 내건 가상 화폐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페이스북은 거래 처리 속도를 높여 실생활에서 폭넓게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나온 가상 화폐는 느린 거래 처리 속도 때문에 통화 화폐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은 1초당 7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결제가 한꺼번에 몰리면 결제 시간은 1건당 10분까지 늘어난다. 페이스북은 내년 출시할 경우 서비스 초기에는 초당 1000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점차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IT(정보기술) 업계 관계자는 "리브라의 거래 처리 속도도 1초당 2만4000건을 처리하는 비자카드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지만, 가상 화폐를 실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속도"라고 말했다.

☞리브라 (Libra)

미국 페이스북이 내년에 발행하는 가상화폐다. 27억명에 이르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와츠앱 사용자들이 서로 돈을 보내거나 물건을 구매할 때 쓸 수 있다. 달러·유로화 등과 연동해 가치가 급격하게 변하던 기존 가상화폐와 달리 안정적이다.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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