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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내 책을 말한다] 취미로 직업을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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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욱·번역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그 좋다는 걸 내가 해냈다. '취미로 직업을 삼다'(책읽는고양이)라는 책까지 펴냈다. 아쉬움이라면 일흔이 넘어서 그 맛을 봤다는 점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로 살았다. 적어도 일흔까지는 그랬다. 기자로 일하며 퇴직하기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 먹고 살기 바빠 '꿈'이라는 단어는 꺼내볼 생각조차 못하고, 아파트 늘려가는 재미와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현실에 충실했다. 퇴직 후 전원주택에서 유유자적 글이나 끼적이려 했으나 잘못 선 보증으로 그야말로 쫄딱 망해 남의 집 묘막살이를 하게 된 것이 일흔의 일이다. 그나마 3년 만에 쫓겨났다.

되돌아보면 생의 가장 절박한 그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찾아온 기회였다.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잘하는 것과 꿈을 다시 꺼내어 생계를 꾸리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릴 적 나는 책을 좋아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문학동인회를 만들고, 대학도 국문과를 갔고, 문학지 신인 작품 모집에 응모하여 최종 결과를 기다리던 문학청년이었다. 위기에 이르러 자연스레 나는 번역을 시작했다. 애초에 파릇한 번역가들과의 경쟁은 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만의 필살기를 꺼냈다. 어려서부터 읽어온 명저 중에 아직 안 나온 책들, 저작권이 풀린 좋은 책을 발굴하여 출판사에 제안했다. 그렇게 15년 동안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취미로 직업을 삼아 일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물론 치열하고 고되지만 내 삶은 생기로 가득하다. 힘들어도 재밌고 신나고 보람 있다. 어릴 적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좋아했다. 달 대신 6펜스를 좇기 쉬운 우리들이지만, 언젠가는 자기만의 달과 만나기를 바란다. 다만 나보다 빠르면 좋겠다.





[김욱·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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