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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25m 철탑에서 맞이한 추석…"삼성 사과·복직 없인 못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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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노조 설립 추진하다가 해고… 20여년째 투쟁 중인 김용희씨

"신념으로 지금까지 버텨…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복직 없인 안 내려가"

땅에서 지켜보는 동료들 "삼성에서 하루빨리 나서주길"

CBS노컷뉴스 서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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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0)씨가 서울 강남역 사거리 CCTV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사진=서민선 기자


"명절 때만 되면 미치죠, 그냥. 지상에 있으면 명절을 나타내는 달력의 빨간 글씨보다 얼굴이 더 벌겋죠. 괴로워 술로 사니까. 그러니 땅에 내려가고 싶겠어요? 차라리 죽어도 여기서 죽는 게 더 낫지..."

추석 당일인 13일 고향으로 향하는 차량이 지나가고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 강남역 사거리. 이곳 한쪽에 있는 25m 높이의 CCTV 철탑 위에서 95일째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김용희(60)씨는 '추석' 이야기를 꺼내자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91년 제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해고됐을 때 집을 나가셔서 행방불명 됐고, 어머니는 제가 2000년에 구속되자 쓰러지셔서 5년 후 돌아가셨다. 결국 저 때문에 두 분이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명절만 되면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며 울음을 삼켰다.

1982년 삼성항공에 처음 입사한 김씨는 1991년쯤 노조를 설립하려 하자 회사로부터 갖은 협박과 회유는 물론 납치까지 당했다고 한다. 회사는 김씨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괴롭혔다. 결국 김씨의 아버지는 유언장만 남겨둔 채 집을 나갔다.

김씨는 "삼성에서 집에 찾아와서 '당신 아들 계속 투쟁하면 생명에 지장 있을 것'이라고 공갈·협박을 일삼았다"면서 "아버지가 저를 찾아와 설득하다가 안 되니까 집을 나가셨다. 그것이 아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아버지가 손자들을 참 예뻐하셨다. 그런데 손자가 5살인데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으니 얼마나 눈에 밟히셨겠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들이 죽을 것 같으니까. 그 예쁜 손자들을 두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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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60)씨의 투쟁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기아차 해고노동자 박미희(58)씨가 서울 강남역 사거리 CCTV 철탑에서 농성중인 김씨에게 줄을 이용해 저녁 식사거리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서민선 기자



김씨가 가족들의 반대에도 끝까지 투쟁하는 이유는 노조 설립을 추진했던 일이 '옳은 일'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께서 천만인이 반대할지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하라고 하셨다. 삼성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옳은 일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첫 번째 해고 이후 94년에 다시 삼성건설에 복직했다. 다만 회사는 그를 해외 산업부로 보냈다. 노조를 만들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듬해 회사에서 그에게 '노조 포기 각서를 쓰지 않으면 출근시킬 수 없다'고 못 받으면서 김씨는 해고통보도 받지 못하고 출근도 가로막혔다. 김씨는 회사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 복직'을 주장하며 지금껏 투쟁 중이다.

1년여 전부터 김씨와 함께 투쟁하며 그를 지켜본 동료들은 그의 건강 상태를 가장 걱정했다.

삼성중공업 해고노동자인 이재용씨는 "현재 1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제대로 눕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다 보니까 근육이 마비됐다가 풀렸다가 한다더라"면서 "너무나 열악하고 힘든 상황이라 밑에서 지켜보는 게 걱정되고 힘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김씨가 55일 동안 단식 투쟁을 했는데,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황"이라며 "게다가 철탑이 바람에 계속 흔들리니까 어지럼증도 호소하고 있다. 삼성 측이 나서서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를 곁에서 1년 넘게 지켜본 기아차 해고노동자 박미희씨 역시 "사람이 먼저인 이 세상에서 사람의 인격을 파탄시키고 그 가족들까지 파멸로 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에 묵묵부답하고 있는 삼성이 참 원망스럽다"면서 "김용희 동지의 건강 등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나서서 해결의 실마리를 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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