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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매경이 만난 사람] `감사원맨`서 전격 변신 1년 왕정홍 방위사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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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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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정부 기관이 있다. 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갖춘 무기를 구매해야 하는 안보적 측면과 무기 구매 시 가격 대비 성능, 즉 가성비를 최대한 높여야 하는 경제적 측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을 이끈 지 1년을 맞는 왕정홍 청장은 국방예산 50조원 시대를 앞두고 방위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군과 방위산업체들에 덧씌워진 '방산비리'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도 왕 청장이 적극 노력하는 분야다. 방위산업계의 숙원이었던 원가제도를 개선한 것은 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평가되고 있다. 왕 청장은 첨단 무기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실패 시 면책을 제도화하자고 강조하면서도 국민의 세금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내부 규율의 필요성도 잊지 않았다.

―1년 재직 기간을 돌아본 소회는.

▷방위사업청 바깥의 시각, 즉 감사원의 시각으로 보다가 직접 안에서 보니까 실상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밖에서 볼 때는 '왜 계약을 제대로 이행 못 했다고 제재를 해놓고 다시 그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느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 그런데 안에 들어와서 보니 정부가 방산업체를 지정해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국가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필수적인 물자를 생산하는 방산업체를 지정한 것이고 대체할 업체가 없기 때문에 다시 그 업체와 계약해야 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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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사업청이 사업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고 있나.

▷국민 신뢰를 받는 방위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했고 방위사업청이 진행하고 있는 200여 개의 개별 사업이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3000t급 국산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을 성공적으로 진수했고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등 성과를 위해 뛰고 있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퇴직 공직자 및 방산 중개업자 관리를 강화하고, 처벌 수위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투명성이 더 필요하다. 방위사업청 직원들이 업무를 하면서 감사를 지나치게 많이 받는다는 불만 섞인 얘기가 있다.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방위사업청이 사용하는 예산, 즉 방위력개선사업 예산이 올해는 15조원 이상이고 내년 요구액은 16조원을 넘는다. 이에 더해 국방부의 위탁 예산도 4조원 넘게 쓴다. 예산 규모가 크면서도 방위사업청은 직접 무기 구매와 개발 사업을 진행한다. 다른 행정부처가 주로 보조금이나 복지수당을 집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예산을 많이 집행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를 많이 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처벌이나 지적이 많아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절차를 개선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소홀함이 없는지 꾸준히 돌아봐야 한다.

―방위산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어떤 복안이 있나.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구매하는 사업은 TV나 냉장고처럼 대량생산을 하는 것을 구매하는 것과 다르다. 하나의 소총이라고 해도 실탄이 발사돼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하려면 정밀하고 정확한 무기체계를 만들어서 납품해야 한다. 이렇게 무기체계는 양산이라 하더라도 하나하나가 연구개발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방위력개선사업을 하는 법 체계가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 모든 무기 체계 생산에는 연구개발 개념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유연한 법 적용이 돼야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개발자와 연구자를 장려할 수 있는 시스템, 즉 성실 수행 인정 제도가 정착돼야 할 것 같다. 특히 여러 중소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수입 부품의 국산화 개발에 대한 지원 확대를 건의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상황과 맞물려 방위사업청에서도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보다 많은 국산화 부품이 무기체계에 적용되고 나아가 부품 수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무기체계 연구개발 사업 추진 시 중소기업의 부품 국산화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K11 복합형소총 문제는 향후 어떻게 되나.

▷해당 부서에 빨리 검토해 방향을 결정지으라고 지시했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결론을 내리겠다. 감사원에서 부정적인 내용이 나왔지만 모든 것을 중단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연구개발만이라도 계속할 수도 있는데 양산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 다양한 방안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다. 이른 시간 내 결론을 낼 것이다.

―무기 도입국의 추세와 대응 방안은.▷최근 무기 도입국들은 단순히 무기 도입뿐 아니라 자국 방산 육성을 위해 현지 생산, 합작 투자 등의 포괄적 협력을 요구하는 추세다. 무기를 수입하는 입장에서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항이면서 대규모 예산 투입 사업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 관점에서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 방산수출은 좋은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적대국가에는 무기를 팔지 않듯이 국가 간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한다. 방위산업 수출에서 단순히 완제품을 납품하면 끝난다고 하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수출국과 제품을 공동생산하고 그 제품으로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기술이전도 동시에 이뤄지는 수출 정책으로 바꿔줘야겠다는 생각이다.

―방위사업청이 14년 만에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했다. 이번 조직개편의 취지와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이번 조직개편은 사업관리와 계약관리 업무를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방위사업청이 2006년 개청한 이래 사업관리본부와 계약관리본부가 별도로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신속하고 효율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 사업관리와 계약관리를 하나의 사업부 내에 통합하여 사업부장의 책임 아래 사업과 계약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도록 바꿨다. 사업은 2개의 사업본부 체제로 해서 기반전력사업본부, 미래전력사업본부로 재편성하고 사업관리 중심으로 조직을 재설계했다. 앞으로 품질 좋은 무기를 군의 요구 시기에 맞게 도입해 전력화하고 방위산업체의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생산비용 줄인만큼 되돌려줘 방산업체 기술혁신 유도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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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홍 방위사업청장(가운데)이 지난 6일 라즈나트 싱 인도 국방장관 방한 때 열린 양국 방산 협력 포럼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방위사업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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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원가구조 개선 나선 배경은.

▷방산업체를 방문해 진솔하게 어려움을 듣는 '다파고'를 진행하다가 업체 대표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누구나 알 만한 큰 그룹에 속한 방산업체였는데 다른 계열사보다 회사의 성장이 너무 정체돼 있다는 얘기였다. 그룹 내 다른(민수용품 제작) 계열사는 수십 배 커졌는데 방산계열사만 그대로인 이유가 바로 원가 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현행 원가제도는 정부가 업체의 실발생 비용을 책임져주고 거기에 이윤을 더해주는 구조였다. 방위사업청과 직접 계약을 하는 큰 체계종합업체들은 모든 연구개발을 정부 예산으로 하고 또 양산을 할 때도 예산을 받아서 하면 된다. 비용을 절감하면 받을 수 있는 정부 예산도 같이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작은 중소업체를 방문했을 때는 뜻밖의 상황을 목격했다. 원가제도 개선을 절감했다. 조그만 중소 업체 중에서 1년에 두 배, 세 배씩 성장하는 곳이 제법 많다. 정부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 연구개발을 통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뛰어난 부품을 생산해 매출이 급신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체계업체에 적용되는 원가제도가 중소기업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급성장할 수 있었다.

―원가 구조가 어떻게 바뀌나.

▷원가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용역을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해서 개선안이 나왔다. 현재는 업체가 원가를 제출하면 방위사업청은 자료를 검증하기 위해 실발생 비용이 맞는지 일일이 실사 작업을 하며 따져봐야 했다. 앞으로는 성실성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업체의 자료를 일단 진실된 것으로 받아들이되 사후 검증을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방산원가 산정을 위해 표준원가를 도입할 것이다. 노임과 공수(필요한 노동 시간)를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결정하고 이를 원가 산정에 적용할 계획이다. 업체는 노무비를 절감한 만큼 이익이 돌아가게 된다.

―원가 구조 개선으로 방위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기대하나.

▷업체들이 실발생 비용 보상원칙에 길들여져 스스로 혁신을 하지 않고 기업 성장이 정체돼 왔다. 대형 업체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반면 중소 규모 업체들은 매출이 뛰고 있다. 원가 구조를 바꾸게 되면 규모가 큰 체계종합업체들이 수출과 자체 개발, 국산화를 하고 이윤이 가파르게 올라갈 것이다. 혁신을 안 할 수 없다. 이는 업체 내부에서도 나오는 얘기다. 대기업의 얘기는 '비용을 많이 발생시켜야 이윤이 늘어나는 원가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형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업체들은 '값비싼 외국 부품을 써야 비용이 늘어나서 좋은데 누가 부품 국산화를 하겠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원가를 줄일수록 그 절감액이 업체로 돌아가는 구조로 바뀌게 돼 방위산업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지게 될 뿐만 아니라 방위산업이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왕정홍 방위사업청장은…

△1958년 경남 함안 출생 △경남고 △연세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행정고시 29회 △감사원 공보관 △감사원 재정경제감사국 국장 △감사원 기획조정실장 △감사원 1사무차장 △감사원 감사위원 △감사원 사무총장 △방위사업청장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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