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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90] 인간을 대신해 ‘영원히’ 예배드리는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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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예배드리는 남자, 기원전 2900~2600년경, 설화석고, 높이 29.5㎝,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한 남자가 두 손을 가지런히 마주 잡아 가슴 앞에 모으고 섰다. 입술은 굳게 다물었지만, 두 눈은 될 수 있는 한 크게 떴다. 눈앞에서 불꽃이 튀거나 모래바람이 휘몰아쳐도 절대 깜빡이지 않을 기세로 눈을 부릅뜬 이 남자는 지상의 존재가 아닌 천상의 신(神)을 향해 풍요와 안락을 기원하는 중이다. 그 간절한 마음이 근 5000년을 내려와 지금도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 상은 1933년 현재 이라크 남부의 디얄라주(州) 텔 아스마르 지역에 있었던 고대 수메르 문명의 아부 신전에서 발굴된 크고 작은 상 12기 중 하나다. 남자가 열, 여자가 둘인데, 이들은 하나같이 두 손을 마주 잡아 몸 앞에 모은 겸손한 자세를 하고 신전 바닥에 곱게 파묻혀 있었다. 원통 기둥 같은 하체와 딱딱하게 각진 사다리꼴 상체에 물결무늬를 빽빽하게 채워 넣고 검게 채색한 머릿결을 가진 이 상들은 흰 조개껍데기 위에 검은 석회석이나 푸른 광물인 라피스 라줄리를 박아 넣은 크고도 영롱한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다. 이들은 늘 신 앞에 설 수 없는 인간들을 대신해 신전에 안치된 채 영원히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고대 수메르 문명은 신 중심 사회였다. 그들이 기도를 올리는 대상, 아부는 풍요의 신이지만, 신은 때때로 잔인하고 변덕스러웠다. 언제 어떤 자연재해가 닥칠지 예측할 수 없던 시절,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찾아와 인간의 생존을 위협했어도 기도를 빼고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이 지역은 쿠르드족과 수니파 및 시아파 등이 뒤섞여 각 종파 간 분쟁이 격렬한 곳이다. 안락을 향한 이들의 기도가 언제 이뤄질지는 신도 모를 것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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