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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제작진 애먹이는 '수퍼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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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수퍼 데이(super day)'. 운동선수 등이 아주 훌륭한 활약을 보인 날을 칭하는 신조어다. 우리나라가 워낙 굵직굵직한 뉴스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작진이 '특별히 훌륭한 활약'을 해야 하는 '수퍼데이'가 있다. 이를테면 지난 목요일(29일)처럼.

그날은 오랜만에 바싹 긴장한 날이었다. 먼저 2년 반 가까이 달려온 국정 농단 재판의 대법원 선고가 예고돼 있었다. 그것도 대법원 선고 사상 첫 TV 생중계라니, 제작진도 호기심이 동했다. 여기에 최근 세간을 흔드는 조국 후보자의 뉴스도 뜨겁게 살아 있었다. 또 잠행하던 연예계 거물 양현석 전 대표까지 '원정 도박 혐의'로 경찰 포토라인에 나타났다. 평소라면 이 중 하나만 있어도 수십 분은 거뜬히 방송할 텐데, 이렇게 한꺼번에 대형 이벤트가 쏟아지다니…. 바로 어제까지도 아이템 걱정에 한숨짓던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이렇게 굵직한 아이템이 많은 '수퍼데이'가 다가오면 그만큼 마음도 바빠진다. 대법원 선고만 하더라도 며칠 전부터 방대한 국정 농단 관련 자료를 챙겨 보고, 방송 당일에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신문이나 다른 방송까지 꼼꼼히 모니터해 조금이라도 차별화된 그래픽을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예상 시나리오를 세워 준비할 수 있는 속보 자막, 주요 인물의 녹취 영상까지 하나하나 준비하다 보면 순식간에 생방송 시간이 다가와 스튜디오로 달려가야 할 때가 많다. 이런 날은 물 한잔 마음 놓고 마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미리 비상식량을 책상 한편에 갖다 놓고 일을 시작해야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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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애써 준비해도 실제 생방송에선 다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측 불가능한 현장 상황에 따라 중계와 대담을 밀고 당기며 방송하다 보면 준비한 내용이 지나가 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한 것 반만 방송에 써도 성공"이란 자조 섞인 농담을 나눌 때가 많다. '그럼 좀 덜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영상 단 한 컷이나 그래픽이라도 필요한 바로 그 순간 화면에 띄우는 것이 제작진의 임무이기에 게으름을 피울 순 없다. 그래서 '수퍼데이'는 제작진의 초심을 중간 점검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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