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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매경이 만난 사람] 대표적 미국통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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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필동 한옥마을에서 매일경제 기자와 만나 한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우려를 설명하고 있다. 그의 재킷에 무공수훈자회(화랑무공훈장 수훈) 배지가 보인다. [이승환 기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동맹 폄하 발언, 북한의 마이웨이 등 한국을 둘러싼 안보 현실은 '첩첩산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에서 한미동맹 전문가로 불리며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손꼽히는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은 예비역 신분이지만 지금도 주한미군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미국을 방문해 한국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있다.

전 전 사령관은 26일 매일경제와 만나 최근 발생한 다양한 안보 현안에 대해 직접 접한 미국 측 반응을 전하며 "심각하다" "걱정된다" "안타깝다"는 심경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고 현재도 정부의 안보정책을 자문해주고 있는 그는 "정부의 평화 구축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할 말은 있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미동맹에서 현안이 매우 많다.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미국 사람들은 한미 관계에 대해 잘 모른다. 6·25전쟁을 치렀다는 것, 최근 인기 있는 K팝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에 내세울 것은 정말 많다. 경제적으로 발전해 세계 경제에 기여하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라는 가치를 실현했다. 미국이 성공 사례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7년 반 동안 참전하면서 2만5000명의 사상자가 났다. 다른 어떤 우방도 그렇게 기여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잘 모른다. 중동에 파병했을 때도 35개국 중에서 병력 규모가 세 번째로 컸다. 미국이 잘 모르는 것은 사실 우리 잘못이다. 적극적으로 홍보했어야 했는데 외교적 능력이 부족했다.

한미동맹에서 우리가 아쉬운 게 많기 때문에 우리가 기여한 것을 많이 알려야 하고 동맹으로서 실질적 기여도 해야 한다. 사실 기여를 많이 하고 있다. 평택기지에는 95% 가까운 비용을 우리가 제공했다. 방위비분담금도 연 1조원 이상 내고 있다. 이런 내용을 잘 홍보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각인돼 있다.

미국 사람들을 잘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말단부터 이뤄져야 한다. 한국에는 3만명에 가까운 미군 장병이 있다. 그들과 진솔한 교류만 해도 되는데 그런 노력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말하나.

▷미국은 6·25전쟁에서 피로 맺은 동맹이다. 굉장히 중요하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다. 미국 대통령은 돈을 따지는 사람이다. 제가 아는 미군들은 피로 맺은 가치를 잘 알고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우정과 전우애도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기념식에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한 명도 안 왔다. 동맹도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이를 유념해야 한다. 한미관계는 노무현정부 이전에는 일방적으로 미국에 기울어 있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대등하게 된 것은 맞는다. 대등한 관계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이런 책임을 다한 것도 아니다. 특히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엄청 싸웠다. 상처가 남아 있었다. 문재인정부는 방위비분담금을 많이 늘려줬다. 그런데 지소미아 종료, 유엔군사령부 갈등 등 현 정부가 방위비분담금 늘려준 효과를 못 보고 있는 것 같다. (신뢰 부족 상태에서) 미국이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다.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신뢰 부족이 누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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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더 알리는 것이 한미동맹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인가.

▷미국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런데 최근 미국 내 한국 전문가들도 한일 갈등 문제에 대해 자신들 시각에서 보는 일이 많다. 이를 우리 시각에서 보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 근본이 신뢰 구축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더구나 최근 방위비분담금 협상 문제로 인한 예민한 양국 관계, 남북 관계 발전에 따른 미·북 대화, 미·중 무역분쟁, 한일 갈등이 복합돼 있어 자칫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다분하다. 미국과 소통하고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발 빠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촉발 요인에 의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까 걱정이다.

미국은 현재 패권 국가이기 때문에 세계가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진보정부가 들어선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에게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잘 감지하고 더 노력했는지 돌이켜보고 보완할 게 있으면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훈련이 필요 없다고 계속 말하지만 미 정부와 미군 내에서는 훈련의 가치를 계속 인정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훈련에 대해 무지하거나 거래를 위해 무지한 척하는 것 같다. 주한미군은 병력 순환이 1년에 절반씩 이뤄진다. 한국이라는 새로운 곳에서 종합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연합훈련과 연합연습이다. 새로운 임지에 와서 임무를 숙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연합연습은 1년에 겨우 2회 하는데 기본임무 수행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이)자꾸 공세적이라고 하는데 그런 내용은 완전히 배제돼 있다.

한미연합사령부에서는 현재 한반도 프로세스를 지원하기 위해 어떠한 오해 소지가 있는 것을 배제하고 있고 비판을 감수하면서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필요 없다고 동맹국 대통령이 애기하는 것은 안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가 출신이기 때문에 거래를 위해서 하는 소리이기를 바라는데, 그런 게 아니라면 정말 무지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연합연습을 하지 않으면 군 태세에 어떤 영향이 오나.

▷군인들이 자신의 임무를 숙지하지 못한다. 유사시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사시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숙지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러면 오판을 내릴 수 있고 작은 일을 크게 만들 수 있다. 한번 건너뛰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 그러면 회복하는 게 굉장이 어렵다. 두 번만 건너뛰면 부대원 전부 모르는 거다. 한미연합사령관은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 발생을 억제하고, 억제에 실패했을 때는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을 이기고 종결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는데 이런 상황이 참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소미아 종료, 韓이 약속 깬다는 아베 함정에 빠진 느낌
미국인들 한일역사 잘 몰라…'다 끝난 일인데 왜이래' 생각

매일경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늦여름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진 필동 한옥마을 산책로를 걸어 내려오고 있다. [이승환 기자]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후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먼저 한일관계를 현재 상태로 악화시킨 주체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일본이 먼저 경제무역 이슈를 안보 이슈로 바꿨다는 청와대 발표는 명분이 있다. 일본이 먼저 안보를 내세워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는데 어떻게 정보를 교류할 수 있겠냐는 설명은 명분상 우리에게 득이 됐다. 그러나 실은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 있다. 실질적으로 보면 제3국인 미국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일본도 좋은 게 아니고 우리도 좋은 게 아니다. 미국이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조금 변형될 수 있다. 우리와 일본 모두에 좋지 않다.

두 번째로 미국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됐다. 미국이 지소미아 체결 단계부터 열심히 노력했는데 우리가 종료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에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면 이를 보상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한다든지,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양보한다든지 등 여러 현안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세 번째로 아베 정권이 만들어놓은 함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일본은 지소미아를 연장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고, 우리는 종료하고 파기한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은 배경을 모르고 마치 우리가 또다시 약속을 어긴 것처럼 말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계속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심상치 않다.

▷지소미아 종료로 인한 마지막 걱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를 거래로만 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지소미아 종료를 하나의 거래로 보고 있다면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즉 거래를 공정하게 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와 동맹 문제를 다룰 때 주한미군을 감축한다든지 한미연합연습을 원천적으로 못하게 폐지하든지 아니면 북한과 매우 일방적인 거래를 할 가능성 등이 매우 걱정된다. 지소미아 종료는 미국과 오해가 없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미국 내 아시아 전문가는 대부분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를 어떻게 바로잡을지가 우리에게 과제로 남아 있다. 지소미아를 종료시킨 것에 대한 명분은 있지만 이 명분을 세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미국 국민은 물론이고 아시아나 동북아시아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왜 이렇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일제 치하에서 설움을 받고 그 결과로 나라가 둘로 갈라진 것을 미국 일반 국민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이해를 못한다. 미국은 진주만 폭격을 받고 태평양전쟁에서 포로수용소에 갇혀 잔인무도한 경험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은 (용서를) 못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우리가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를 이야기하면 '다 끝난 것을 두고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왜 이렇게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미국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좀 부족했다.

▶▶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1958년 서울 출생 △경기고 △육사 37기 △서울대 행정학 석사 △경남대 정치외교학 박사 △합동참모본부 전작권 전환추진단장 △육군 제27사단장 △한미연합사령부 부참모장 △유엔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 △특수전사령관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특수 및 지상작전연구회 고문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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