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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자들도 공감하는 '日 잘못 끼운 첫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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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편집자주] 고령화 등 문제를 앞서 겪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타산지석' 삼기 위해 시작한 연재물입니다. 당분간 '지피지기'를 위해 일본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日산지석]
패전 이후 일왕-궁내장관 대화기록 공개
왕 "반성" 성명 추진, 실권 쥔 총리가 'NO'
한국전쟁으로 부활 꾀하던 日, 과거 덮기
"애매한 표현, 현재 이어진 문제의 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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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HK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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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하면서 한·일간 갈등도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그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한 바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최근 일본에서는 1950년 전후의 역사자료가 하나 나와 눈길을 끕니다.

지난 18일 NHK방송은 궁내청(왕실 담당 부서) 장관이었던 다지마 마치지의 유족을 통해 히로히토 일왕와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18권의 '배알기'(拜謁記)를 받아 전문가의 분석을 거쳐 일부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배알은 지위가 높은 사람을 찾아뵙는다는 뜻입니다.

다지마 전 장관은 1948년 6월부터 5년 반가량 궁내에 있었습니다. 시기는 한국의 해방 및 전쟁 시기, 그리고 일본의 패전 및 독립 시기입니다.

1926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며 쇼와 시대를 연 히로히토는 일본이 벌인 전쟁을 이끌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이후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의 통제를 받게 되고, 1946년에는 '평화헌법'(일본국헌법)을 만들어(1947년 시행) 왕을 상징적인 존재로 축소시킵니다.

NHK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51년 1월 히로히토 일왕은 평화조약이 맺어지면 자신이 대국민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는 뜻을 밝힙니다. 이해 9월 8일 연합군은 일본과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2년 4월 28일 발효)을 맺는데 협상 기간 중에 먼저 의사를 드러낸 것입니다.

조약을 맺은 후인 1952년 1월 11일 히로히토는 "나는 성명에 어떻게든 '반성'이라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2월 20일에는 "반성이라고 할 것은 내게도 많이 있다"면서 군부도 정부도 국민도 모두 반성해 두 번 다시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싶다는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궁내에서는 이를 반대했지만 그는 반성과 자숙의 표현을 고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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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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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4월 말 독립한 일본은 5월 3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 및 일본국헌법 시행 5년을 맞아 히로히토 일왕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반성' 표현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국정의 실권을 쥐게 된 총리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배알기에 따르면 성명 발표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4월18일, 당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전쟁에 대한 후회와 관련된 부분을 모두 삭제할 것을 편지로 요청합니다. 이유로는 "일왕의 퇴위설이 나올 수 있다"(쇼와 시대는 1989년까지 이어짐), "전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게 될 수 있다" 등을 들었습니다. 히로히토는 불만이었지만 총리가 반대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배알기를 분석한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당시 일왕과 총리의 생각이 달랐던 것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히로히토 일왕에게 전쟁은 쓰라린 교훈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었지만, 요시다 총리에게는 전쟁과 군국주의가 결별해야 할 대상이었다."(시가쿠칸 대학교 차타니 세이치 준교수)

일본의 독립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1950년 6월25일) 원자폭탄 두 발을 맞는 등 전쟁에서 패하며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위축됐던 일본은 한국전쟁을 기회로 부활을 꾀했습니다.

역사가인 하타 이쿠히코는 NHK에 "요시다 총리는 종전 조서(1945년 항복 선언)로 전쟁문제가 일단 끝났다는 입장이었다"면서 "마침 한국전쟁의 특수가 있어 경제성장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도 패전의 수렁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간다는 희망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책임감을 떼어내고 과거를 덮으려고 한 선택인데, '반성' 표현이 빠진 것이 결국 화근이 됐다는 평가들이 나옵니다.

히도츠바시대학교 요시다 유타카 특임교수는 "(배알기를 보니) 일본 사회의 분기점이 되는 시기였다고 느껴진다"며 "일왕 성명이 애매하게 처리돼 장래에 화근을 남겼다"고 평가합니다. 앞서 나온 차타니 준교수는 "반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이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에서 아직도 문제가 있는 근본 원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지난 15일 한국의 광복절, 아사히신문은 토막칼럼 '소립자'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입장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 과거를 돌이켜, 짓밟힌 아픔을 안다. 정치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해서."

김주동 기자 news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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