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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아이돌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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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출신 K팝 아이돌 멤버들 “홍콩 시위 진압 찬성” 적극적 표명



경향신문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를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를 하루 앞둔 8월 17일 홍콩 타마르공원에서 정부와 경찰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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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사태가 국경을 넘어 한국과 세계 곳곳에도 다양한 여파를 미치고 있다.

국내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 중인 중화권 출신 멤버들은 잇따라 홍콩 경찰의 시위 진압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아이돌 멤버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대중문화계 인사들도 홍콩 시위 진압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비판과 지지가 엇갈리는 반응을 낳고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이 현실적인 문제와 얽히면서 거대한 중국 대중문화 시장에서 활동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셈법이 복잡해지는 상황이다.

홍콩에서는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한 송환법 반대 시위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시위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이 폭력적인 대응을 지속하자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러한 강경진압 조치에 대한 거센 비판여론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기류가 지배적인 국내 여론과는 달리 국내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중화권 출신 케이팝 아이돌들의 입장은 ‘홍콩 경찰 지지’와 함께 중국의 오성홍기를 앞세워 ‘하나의 중국’ 원칙에 적극 동의한다는 의견까지 내비치고 있다. 그간 국적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아이돌 멤버들이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길 꺼려했던 행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민감한 주제에 발벗고 나서 의견 피력

‘나는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한다.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다.’ 에프엑스 멤버 빅토리아가 8월 15일 인스타그램에 중국 오성홍기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이다. 빅토리아는 중국인들의 이용도가 높은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도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는 해시태그를 공유한 바 있다. 빅토리아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 출신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웨이보 등 중국 SNS 계정에 ‘홍콩 경찰 지지’ ‘홍콩이 부끄럽다’는 게시물을 올리거나 해시태그를 다는 등 의견을 표명해 왔다. 주결경, 세븐틴 디에잇·준, 우주소녀 성소·미기·선의, 펜타곤 옌안, WayV 윈윈·쿤·샤오쥔 등 중국 본토 출신 아이돌들은 상당수가 이 움직임에 동참했다.

홍콩 시위 진압에 지지의사를 표명한 아이돌이 본토 출신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워너원 출신 라이관린은 대만 출신이지만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독일로 귀화한 대만 출신 WayV 양양이나 홍콩 출신인 갓세븐 잭슨, WayV 루카스, 마카오 출신인 WayV 헨드리 등도 같은 입장이었다. 국적은 다르지만 중화권 출신이라는 점과 중국 본토 여론을 더 따르는 점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아이돌까지 이 민감한 주제에 발벗고 나선 데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외교적 원칙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나의 중국’은 대륙과 대만으로 나뉜 양안관계에서 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의 중화민국 모두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원칙이다. ‘중국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나라이며 분리독립 등으로 이 원칙을 깨려는 시도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만 내부에서는 현실적이며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중국과는 별개의 ‘대만’ 즉 ‘두 개의 중국론’을 주장하는 쪽도 있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는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양안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그 하나의 중국에서 정통성 있는 합법정부가 각각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또는 중화민국(대만) 정부라고 주장하는 내용뿐이다.

문제는 이전까지 중국의 일부라는 점에서는 눈에 띄는 반대여론이 나오지 않았던 홍콩이 새롭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뒤흔들 소지가 점차 커진 데 있다.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된 이후 중국에서는 중국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라는 주장이 더욱 확고해졌다. ‘일국양제’의 원칙에 따라 홍콩이 민주적 제도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중국 본토를 지배하는 공산당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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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빅토리아가 중국 오성홍기 사진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린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는 게시물. 빅토리아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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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손실 무릅쓰고도 입장 표현

그러나 2014년 홍콩에서 ‘우산혁명’이 일어나면서 홍콩 내 청년층을 중심으로 ‘하나의 중국’에 의심을 표하는 기류는 점차 확산됐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 후보에 반중 인사는 배제하고 친중 인사만 등록할 수 있게 중국 당국이 제한을 걸며 촉발된 시위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문제로 번진 바 있다. 그로부터 5년 후 범죄인 인도 문제로 다시 중국 본토와 갈등이 빚어지면서 홍콩 거주자들은 더욱 빠르게 자신이 ‘중국인’ 대신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밝히는 쪽으로 이동했다.

홍콩대학이 지난 6월 홍콩 거주자를 대상으로 국적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8~29세 연령층에서는 69.7%가 자신의 국적 정체성을 ‘홍콩인’으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30세 이상 응답자 가운데서도 ‘홍콩인’으로 정체성을 밝힌 응답자의 비율은 49%에 달했다. 해당 보고서는 “연령이 높은 계층에서는 중국 본토를 조국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절반 가까운 홍콩 거주자들이 자신을 홍콩인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홍콩 내 분위기는 계속되는 시위 과정에서 중국의 오성홍기를 훼손하는 한편 홍콩의 특별행정구기를 내세우거나 심지어는 영국 국기 유니언잭이 박힌 과거 영국령 홍콩 시절 깃발까지 등장하는 데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당연히 자국의 일부를 식민지로 잃었던 과거 때문에 영국령 홍콩의 역사를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중국인들에게 이러한 움직임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장 중국 정부와 본토 중국인들의 반응은 오성홍기를 내세운 ‘하나의 중국’ SNS를 유포하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넓게 보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중화권 출신 아이돌 역시 중국에서의 이런 기류를 무시할 수 없었던 셈이다. 먼저 중국중앙방송(CCTV)이 홍콩의 송환법 반대시위에서 오성홍기가 훼손된 사태 이후 웨이보에 ‘오성홍기 수호자는 14억명이다. 나도 국기 수호자다’라는 내용의 글을 공유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웨이보에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나를 때려라’라는 게시물을 확산시켰다. 공항 점거 시위대에 붙잡힌 중국 관영매체 기자가 “나를 때려라.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중국 본토에서는 홍콩을 향한 분노가 격화됐던 시점이었다.

오성홍기와 함께 ‘하나의 중국’ 원칙에 강한 동의 입장을 표명한 아이돌 그룹 엑소의 레이 역시 인스타그램에 ‘홍콩이 수치스럽다’며 홍콩 시위대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제적인 손해를 다소 무릅쓰고도 이런 입장을 유지하는 모습도 보였다. 레이는 삼성전자 글로벌 홈페이지의 국가 표기에 대만과 홍콩 등이 중국에 포함되는 방식과는 달리 별개로 표기되어 ‘하나의 중국’ 원칙과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어 결국 갤럭시 스마트폰 모델 계약을 해지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손해도 불사한다는 움직임은 중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유명 연예인들에게서도 이미 나왔다. 배우 양미, 그룹 TFBOYS 멤버 이양첸시, 모델 리우웬 등이 표기 원칙을 지키지 않은 브랜드들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리우웬은 미국의 패션브랜드 코치와의 계약을 해지한 대가로 1억6000만 위안(약 276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할 수도 있는 처지에 몰렸지만 개의치 않고 계약 파기 문서를 SNS에 올리기도 했다.

당연한 애국적 행동이라는 분석도

중화권 연예인들이 중국 본토는 물론 대만·홍콩 출신까지도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나선 데는 당장 거대한 중국 대중문화 시장에서 활동해야 지속적으로 인기와 수입을 누릴 수 있는 현실적인 필요가 크게 작용했다. 홍콩이나 대만보다 중국 시장이 압도적으로 크고 당장 현지에서는 극도로 민감한 문제를 놓고 제대로 입장을 밝혀두지 않으면 언제 비판 역풍이 닥쳐올지 예상하기 힘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정서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중화권 아이돌과 연예인들의 이런 움직임은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애국적 행동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외세의 간섭을 받고, 국·공 내전기 분열을 겪은 중국인들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은 역사적으로 무조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흔들리지 않는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홍규 동서대 교수(동아시아학)는 “물론 연예인들의 입장에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홍콩 시위에 반대한 것은 당장의 수입을 생각한 행동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행동에 확고한 명분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며 “우리로 치면 ‘독도는 우리땅’처럼 당연한 내용이고, 젊은 층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확고한 상황에서 연예인들 역시 마음속 깊이 그 원칙에 동의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본의 아니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는 듯한 행동이 논란이 되어 이미지는 물론 향후 활동 여부까지 불투명해질 뻔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학습효과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2015년 11월 트와이스의 쯔위가 한 방송에 출연해 대만 출신이기 때문에 제작진으로부터 받은 중화민국 국기를 흔들었다가 중화권 팬들로부터 막대한 비난을 들어야 했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사태는 쯔위와 소속 기획사의 사과를 거치고서야 점차 진화됐지만 이 사태로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던 대만에서는 선거 결과에까지 다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여파는 컸다.

이런 일련의 현상 때문에 ‘하나의 중국’ 문제에서만큼은 조용히 넘어가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하는 것이 더 당연한 일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물론 이들 멤버가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 꼭 동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에서만 활동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크지 않기도 하다”면서도 “사상검증이 강요된다기보다는 중국의 연예시장에 어느 정도 발을 걸치기라도 하고 있으려면 필수적으로 지나쳐야 하는 일이자, 본인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일이어서 SNS를 통해 입장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중화권 아이돌들에게 이러한 사정이 있지만 국내 팬들 역시 이런 움직임에 나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엑소의 레이는 수년째 국내 활동 없이 중국 활동에만 주력하고 있기도 해 엑소 팬들은 이번 사태에 힘입어 레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의 ‘8인 체제’로 가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단 K팝 아이돌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중화권 출신 연예인 역시 홍콩 사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결과 역풍을 맞기도 했다. 중국 출신 영화배우 류이페이(劉亦菲·유역비) 역시 웨이보에 ‘홍콩 경찰 지지’ 의사를 밝히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가 그가 주연으로 나서는 디즈니 영화 <뮬란>을 보이콧하자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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