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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일왕의 두얼굴…"군사력 가져야" "전쟁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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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히로히토 전 일왕과 궁내성 장관 대화 담은 '배알기'

군비 재무장 필요성 언급하며 개헌 강조해

아베의 전쟁가능한 국가 군불떼기 해석도 있지만

전쟁의 책임·난징학살 '반성의식' 엿보여

이데일리

△히로히토 일왕[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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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일본 공영방송 NHK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왕(일본명 천황)이던 히로히토 일왕이 패전 7년 후인 1952년 군사력을 재보유할 필요가 있다며 개헌을 주장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를 두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개헌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군불 떼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보도이다.

NHK가 공개한 자료는 일본 왕실을 담당하는 부서인 궁내청의 첫 민간 출신 장관 다지마 미치지가 613회, 300여시간에 걸쳐 히로히토 전 일왕과의 대화를 기록한 ‘배알기(拜謁記)’다. 패전 후 전범 기소를 피하는 대신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상징’적인 역할만 할 수 있게 된 히로히토 전 일왕의 생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이 자료에는 평화헌법을 규정하는 9조에 대해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는 히로히토 전 일왕의 발언이 담겨 있어 큰 관심을 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히로히토 전 일왕은 “헌법 개정에 편승해 밖에서 여러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에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부분은 다루지 않고 군비에 대해서만 공명정대하게 당당히 개정해야 생각한다”(1952년 2월 11일) 등 개정 필요성을 주장한 발언이 여러번 발견된다.

히로히토 전 일왕이 재군비를 위한 헌법 개정과 관련된 자신의 뜻을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에게 전하려고 하자 다지마 전 장관은 “헌법상 그건 말 할 수 없다”면서 “최근 전쟁에서 일본은 침략자로 불렸던 일도 있고 해서 그건 금구(禁句)”라고 말렸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를 두고 히로히토 전 일왕이 패전 7년 만에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일본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는 수십년 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전쟁가능한 국가로의 전환의 사상적 토대가 됐다는 설명이다.

전후 연합군 주도로 제정된 일본 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불보유를 명시해 일본은 전쟁은 일으킬 수 없는 국가라고 못 박았다. 아베 총리는 이 9조를 개정해 현재 방위권만 가지고 있는 자위대를 선제 공격 권한이 있는 군대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히로히토 전 일왕의 발언을 아베 총리의 ‘전쟁할 수 있는 국가’와 동일시하기에는 보기 어렵다는 여러 반론도 존재한다.

히로히토 전 일왕의 발언은 헌법 9조가 있으면 자위대와 같은 조직은 만들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최소한의 방위력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히로히토 전 일왕은 “재군비에 따라 군벌이 다시 일어서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1952년 5월 8일)라는 발언이나 “침략이 없는 세상이면 무장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침략이 인간 사회에 있는 이상 군대는 부득이하게 필요하다”(1952년 3월 11일)라는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챠다니 세이이치 시가쿠칸대 준교수는 아사히신문에 “자신의 시대에서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의식이 히로히토 전 일왕에게는 있었다. 이런 의식이 일본의 안전보장을 우려하는 강한 마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라고 해석했다.

실제 기록 곳곳에서는 전범국가로서의 반성이 나타난다.

히로히토 전 일왕은 1952년 5월 3일 평화헌법 개정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앞서 다지마 전 장관,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와 만나 “성명서에 반성한다는 문구를 넣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1952년 1월 11일), “나는 반성하고 있다는 말을 넣는 것이 좋겠다”(1952년 2월 20일)고 거듭 밝혔다.

히로히토 전 일왕의 이같은 의지는 궁내성 내부의 반발에 부닥쳤지만, 다지마 전 장관이 이같은 뜻을 전달해도 그는 “역시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자숙의 의미가 든 문구를 어떻게든 넣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중일전쟁 때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전쟁범죄인 ‘난징대학살’이다. 히로히토 전 일왕은 1952년 2월 20일 “자신도 반성하는 것이 많다”고 말하며 난징대학살을 언급했다.

히로히토 전 일왕은 “난징대학살에 대해 공식적인 보고를 받지 못해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지만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나온 사실을 보면 너무나도 잔혹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알지는 못했던 일이지만 군(軍)도, 정부도, 국민도 모두 군부의 만행을 못 본 척했던 것을 반성하면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히로히토 전 일왕의 이같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5주년 기념식에서 전쟁에 대한 반성을 담은 문구는 담겨지지 않았다. 요시다 전 총리가 전쟁에 대한 회한을 시사하는 문구는 지웠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전달받은 히로히토 전 일왕이 단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야마다 아키라 메이지대 교수는 “(요시다 전 총리는) 일왕이 반성을 입에 담으면 퇴위로 이어지게 돼 황태자가 아직 어린 상황에서 어려운 국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반성에 대한 뜻을 공표하는 편이 좋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일본의 전쟁 책임은 현재도 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일왕이 반성을 말했다면 새로운 관계의 전환점이 됐을 것”이라며 “(히로히토 전 일왕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 전쟁의 책임을 모두 육군에 지우는 형식이 되며 해군과 관료, 일왕 자신을 포함한 모든 지도층의 책임이 모호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