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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시민의 세금’ 공권력의 무기, 되레 시민을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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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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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범죄인 안도법 개정 반애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가득 채웠다. 이날 홍콩 공항관리국은 이미 홍콩을 향해 이륙한 항공기를 제외한 모든 항공편을 취소했다. 홍콩=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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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홍콩, 검은 안대를 두른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가득 채웠다. 일부는 한쪽 눈에 붉은색 붕대를 덧댄 채였다. 전날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 도중 경찰이 발포한 미상의 발사체에 한 여성 시위 참여자의 오른쪽 안구가 파열되고 코뼈 연골이 함몰되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에 대한 항의 시위였다. 홍콩 공항관리국은 홍콩을 향해 이미 이륙한 항공기를 제외한 모든 항공편을 취소시키는 등 홍콩은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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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홍콩 침사추이 경찰서 인근에서 범죄인 인도법 반대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 경찰이 발사한 '빈백'에 얼굴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명보 캡처/2019-08-22(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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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체로 시민 제압, 사망 위험은 낮지만…

11일 홍콩 여성을 공격해 시력을 잃게 한 발사체는 빈백(Bean bag)으로 추정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 복수의 외신은 전했다. 빈백은 콩처럼 작은 알갱이가 충전되어 있는 주머니다. 주로 구경이 큰 산탄총에서 발사되며 신체 관통의 우려와 살상력이 거의 없어 시위 진압용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위험성은 결코 작지 않다. 표적을 관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빈백의 운동에너지가 고스란히 피격자의 신체에 전달되는 것이다. 근거리에서 발포하거나 얼굴 같은 신체의 약한 부분을 노리고 발사한다면 이번 홍콩 시위의 희생자처럼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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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백(위부터), 고무탄, 소금탄. 인터넷 캡처


시위 진압에는 고무탄(Rubber bullet)도 사용된다. 이번 홍콩 반정부 시위에서 홍콩 경찰이 진압을 위해 사용했다고 알려진 무기다. 최대한 살상을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표준 5.56㎜ 소총탄 규격에 맞게 설계된 제품은 파괴력을 무시할 수 없다. 15m 유효사거리 안에서 인체를 관통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오만에서는 경찰이 발사한 고무탄에 의해 시위 참가자 6명이 숨지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무탄은 소구경 탄환보다는 산탄총(Shotgun) 형태로 주로 발사된다. 사거리와 정확성을 희생하는 대신 인체 피해를 줄이고 피탄 범위를 넓히겠다는 목적이다.

산탄총의 탄환을 단단한 소금(암염) 알갱이로 채운 소금탄도 시위 진압용으로 종종 사용된다. 고무탄과 비슷한 목적이다. 소구경 고무탄이 신체 관통의 위험을 가진 데에 비해 소금탄은 근거리에서 발사되더라도 표피를 뚫고 상처를 입히는 데에 그친다. 하지만 소금탄은 물리적 신체 손상 대신 다른 방법의 타격을 준다. 소금 알갱이가 피부에 박히면서 신체 내부의 세포 삼투압을 변화시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고대 시대부터 고문 수법으로 사용되어 왔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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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아침 홍콩 카오룽반도 삼수이포 지하철역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일회용 물티슈로 주변 안내지도 표지판을 닦으며 지난 11일 전동차 안에 최루탄을 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고 있다.홍콩=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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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ㆍ물대포로 저항 의지 꺾기도

시위 진압에서 빠질 수 없는 진압 군경의 무기는 최루탄이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시위 현장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12주차에 접어든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도 홍콩 경찰은 최루탄과 최루 스프레이 등을 사용해 시위 참가자를 진압하는 모습을 보였다. 3일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AP 통신 등은 일부 시위대가 침사추이 지역 경찰서 등을 훼손하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11일에는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지하철 카이펑 역에서 최루탄을 사용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최루탄은 내부에 최루 가스를 담고 있다. CS가스와 CN가스가 대표적이다. 최루 가스는 호흡 곤란과 점막 자극, 피부 발진을 일으키는 화학 작용을 한다. 헤이그 협약에 의해 독가스로 지정되어 전투용으로는 사용이 막혀 있지만 민간인을 상대로 사용하는 것에는 제한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천식이나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효과를 발생시키고, 눈물과 콧물 등을 분비시켜 시위대의 정상 활동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시위대의 전력을 약화시켜 결국 손쉬운 진압을 가능하게 하는 셈이다.

물대포도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된다. 홍콩 시위에서도 물대포를 도입한다는 움직임은 계속해 포착됐다. SCMP는 7월 말 “홍콩 경찰이 지난해 5월 독일 벤츠사로부터 도입한 212만달러짜리 물대포를 조만간 도로에서 테스트한 후 이르면 8월 중순부터 시위 진압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0일 홍콩 국경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떨어진 중국 선전(深圳)에서는 중국 무장경찰이 탑승한 물대포가 집결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또 18일 대규모 평화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주요 시설 보호를 위해 홍콩 경찰이 물대포를 대기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고압의 물을 분사하는 물대포는 물이 가진 무게에 분사 속도까지 결합해 강력한 힘을 낸다. 지근거리는 물론 장거리에서도 사람이 충분히 부상을 당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도심 지역의 시위를 진압할 때에는 거리 곳곳에 설치된 소화전과 결합,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물을 뿜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최루액을 혼합해 사용할 수 있고 동절기에 작동시킬 경우 시위자들의 동상을 초래할 수 있는 효과적인 비치사성 무기다. 지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는 경찰의 물대포에 직격당한 백남기 농민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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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당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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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은 아니라지만… 위험에 노출당한 시민

전시 상황에서도 비무장 시민을 상대로 전투용 무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상식을 지키지 못하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 1989년 중국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사건처럼 시민의 대규모 희생은 불 보듯 뻔하다. 이에 세계 각국은 이른바 ‘비치사성(非致死性ㆍNon-lethal)’ 무기를 도입해 시위와 폭동, 소요 진압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비치사성 무기라 할지라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시위대와 진압 군경 양측을 막론한 인명 피해는 불가피한 것도 현실이다. 한국 경찰도 사용하는 테이저건의 경우에도 실탄 발사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지만 심장질환자 등 특정 경우에는 사망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합리적 피해를 위해 사용하는 최소한의 도구조차 위험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언제든 무력 진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세계의 걱정을 사는 홍콩 시위 현장에서도 빈백에 의한 실명 사태가 발생한 점을 생각할 때 더더욱 신중한 무기 사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을 겨누고 있는 진압 군경의 무기는 결국 시민이 납부한 세금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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