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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으로 짜낸 '어르신 소일거리'… 고용 왜곡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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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취업자 수 30만명 늘었다지만… 60세 이상이 37만7000명

"조끼 입고 앉아만 있어도 한 달에 27만원이나 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14일 오후 서울 대림동 현대아파트 놀이터 정자에서 만난 김모(85) 할머니는 다른 80대 할아버지 2명과 함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부가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따라 이른바 '놀이터 지킴이'로 일하는 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씩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놀이터에 나와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는지,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는지 지켜본다고 한다. 이날 35도를 넘는 폭염에 놀이터를 찾은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김 할머니는 "밖에 나와서 바람도 쐬고 돈도 버니까 좋다"며 "각 단지 놀이터마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 서너 명씩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경기 성남시 은행동에 거주하는 김모(72) 할머니는 지난 5월부터 월·수·금 오전 9~12시까지 동네 골목길 담배꽁초를 주우러 다닌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쓰레기 좀 주우면 한 달에 26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길래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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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놀이터 지키고 담배꽁초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취업자로 잡힌다. 노인들에게 용돈 나눠주듯, 세금을 동원한 '소일거리 일자리'가 이젠 취업자 수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노인·초단시간 일자리가 지탱

통계청이 14일 발표한 '7월 고용 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29만9000명 증가했다. 지난해 1월(33만4000명) 이후 1년 6개월 만에 최대치이다. 지난해 월평균 9만7000명에 그쳐 '고용 참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올 2월부터 20만명대로 올라섰다. 지난 4월 17만명대로 주춤했지만, 5월부터 다시 20만명 선을 회복해 지난달에는 30만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통계를 뜯어보면 취업자 수가 갑자기 늘어난 지난 2월부터 노인·초단시간 일자리를 중심으로 취업자 수가 대폭 늘어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고용의 양은 늘어도 질은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 취업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60세 이상이 1년 전보다 37만7000명이나 증가했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 2월부터 매달 30만명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경제활동의 주축인 40대(-17만9000명)와 30대(-2만3000명)는 취업자 수가 감소했다. 30·40대 취업자 수는 2017년 10월부터 22개월째 동반 감소하고 있다.

산업별로도 세금이 많이 투입되는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취업자가 14만6000명 늘어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반면 우리 경제 주력 산업인 제조업 일자리는 1년 전보다 9만4000명이나 감소했다. 제조업 일자리도 지난해 4월부터 16개월째 감소 중이다.

초단시간 일자리가 급증하는 현상도 고착화되고 있다. 지난달 주당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1년 전보다 50만4000명(10.8%)이 증가했다. 특히 초단시간(1~17시간) 근로자는 1년 전보다 28만1000명(17.9%)이나 늘었다. 노인 일자리 등 재정 사업이 대부분 초단기 노동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반면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25만명(-1.1%) 감소했다.

정부 '고용 회복' 자화자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정책적 효과로 일자리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날 "고용시장 회복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지금의 일자리는 세금이 떠받치고 있다. 2017년 17조1000억원이었던 일자리 예산은 지난해 19조2000억원으로 12.3% 증가했고, 올해는 23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2.4% 늘었다.

전문가들은 '세금 주도 고용'으로는 고용시장을 떠받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제조업과 30·40 일자리 등 양질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만큼 정부는 고용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노동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 갈등이나 일본의 수출 규제 등 대외적 충격까지 겹치면 세금 주도 고용은 지속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이런 때일수록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갑자기 해외 변수에 부딪히면 대량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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