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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매경이 만난 사람] 노벨경제학상 단골 후보 앨버트 카일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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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후보에 오르는 재무학 교수가 있다. 1985년 세계 최고 경제학 저널 중 하나인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실린 전설적인 논문 하나로 그는 단숨에 스타 학자로 떠올랐다. 바로 앨버트 카일 미국 메릴랜드대 재무학 교수다.

그는 1985년 '카일 모형'으로도 불리는 '연속 경매와 내부자 거래(Continuous Auction and Insider Trading)'라는 논문에서 시장주체들이 가진 사적 정보가 어떻게 거래를 통해 드러나는지를 이론적으로 처음 밝혀냈다. 개인의 최적화 행동을 다루는 미시경제학이 재무(금융) 영역으로 넘어와 발달한 게 시장미시구조(Market Microstructure) 이론인데, 이를 처음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시장미시구조 불변이론(Market Microstructure Invariance)'으로 미국 최대 선물거래소인 CME그룹에서 수여하는 2018 CME그룹 MSRI 상까지 받아 노벨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최근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카일 교수를 매일경제신문이 인터뷰했다. 그는 미국 경제에 대해 "겉보기에(appear to be) 좋아 보인다"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특히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이나 중국 경기 악화로 세계 경제에 불황이 닥칠 것에 대비한 통화정책 여력이 많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중 무역 분쟁이 장기화하면 그 틈새를 파고든 유럽연합과 영국이 수혜를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연기금의 투자기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에서 보다 정교한 투자기법을 도입하면 불필요한 거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연기금 가입자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와 일문일답한 내용을 정리했다.

―미국 경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겉보기엔 좋아 보인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던데, 그 이유는 뭔가.

▷경제지표는 좋게 나타나지만 위험 요인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부채 규모인 70조달러는 경제가 성장할 때는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볼 수 있지만 경제 불황이 닥치면 정부로 하여금 재정정책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재정정책을 펼 수 없으면 통화정책이라도 써야 하는데,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이미 충분히 낮았던 기준금리를 연 2.25~2.50%에서 2.00~2.25%로 더 낮췄다. 통화정책 여력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도 된다. 물론 경제 불황이 닥치면 마이너스 금리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반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만약 불황이 나타난다면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미·중 무역 분쟁 그리고 중국 경제성장 약화 등 복합적인 원인 때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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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전임 연준 의장들과 친분이 꽤 있다고 들었다.

▷벤 버냉키 전 의장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로 처음 왔을 당시 나는 같은 과 교수로 근무해 가깝게 지냈다. 당시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내에선 '과연 버냉키는 미국에 대공황이 다시 찾아왔을 때 대응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경제학자인가'를 두고 토론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재닛 옐런 전 의장과는 버클리에서 같이 근무했고, 점심을 같이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미·중 무역 갈등이 지속되면 유럽연합(EU)이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렇다. 미국과 EU가 과거 같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특정 국가에 대해 경제 제재에 나선다고 가정하자. 그 제재가 효과를 보려면 EU를 비롯한 우방국들이 동참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까지는 그러한 메커니즘이 작동했고, 그러다 보니 제재를 당하는 처지에서는 두려운 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같은 메커니즘이 통할지는 의문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지속되고, 둘 중 하나와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EU를 선택하는 나라가 많아질 수 있다. EU 역시 이를 잘 알고 미국·중국 모두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중간 지대에 머물면서 영향을 확대하는 외교정책을 펼 것으로 본다.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영국은 수혜국에서 빠지는가.

▷아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 수혜를 보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했을 때 미국, 중국, EU와는 또 다른 선택지로서 위상을 갖출 수 있다. 호주·캐나다와 유사하지만, 글로벌 영향력 측면에서는 훨씬 우위에 있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 반면 EU는 유럽 금융 중심지를 런던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다른 도시로 옮기려고 할 텐데, 이게 현실화하면 영국으로서는 큰 자산을 잃게 될 것이다.

―1985년도에 이코노메트리카(Econo

metrica)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정보 비대칭 등을 이유로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한 지 30년 넘게 흘렀다. 그동안 주장에도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

▷변한 건 없다. 나는 여전히 개인이 시장을 이기는 건(주식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는 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보기술(IT) 등이 발달함에 따라 거래 수수료를 비롯한 개인의 주식 투자 비용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주장의 핵심인 '정보 비대칭성'이 완화되진 않았다. 또 개인이 시장을 이기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투자 규모도 어느 정도는 돼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개인투자자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주식에 투자할 수 없고, 기관투자가에 비해 자금 여력도 부족하다.

―인공지능(AI)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도입돼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나.

▷AI로 종목을 추천하거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주는 서비스는 이미 제공되고 있지만 시장을 이기는 데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머신러닝을 통한 중·장기적인 투자 컨설팅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AI가 정보 격차를 줄여주는 건 아니다.

―같은 이유로 가상화폐 시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것으로 안다.

▷어떻게 보면 가상화폐 시장은 주식시장 보다 더 소수의 '정보 거래자(Informed Trader)'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정보가 별로 없는 다수의 '소음 거래자(Noise Trader)'는 수익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과 달리 일반인 투자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당신은 주식 투자를 안 하나.

▷나는 개별 주식 투자는 안 한다. 대신에 지수(Index)를 따라가는 인덱스 펀드에만 몇십 년째 장기 투자를 하고 있다. 그것도 퇴직연금과 교원펀드 정도인데, 펀드 운용사도 가장 대표적인 뱅가드와 피델리티 상품에 돈을 넣어놓고 있다.

큰손 국민연금, 매매 패턴만 바꿔도 수익률 높일 수 있어
매매빈도 적게·기간 길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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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교수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규명하는 데 관심이 많다. 특히 연기금처럼 규모가 큰 투자자들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거래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연금 같은 글로벌 연기금이 '거래비용(Transaction Cost)' 줄이기에 보다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래비용은 다른 말로 '시장충격비용(Market Impact Cost)'이라고도 한다. 연기금 같은 '큰손'이 주식을 매도하면 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해당 종목은 물론이고 시장 전체가 하락하는 사례도 종종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비용이 발생한다. 주식을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팔게 되면 주식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매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기금으로서는 손실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매도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전체 주가가 떨어지는 '주식시장충돌(Stock Market Crash)'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 투자자들까지도 손실을 볼 수 있다. 즉 대량 거래에 따른 시장 충격 때문에 주식을 살 때는 평균 매수 단가가 높아지고, 주식을 팔 때는 평균 매도 단가가 낮아지는 셈이다. 실제로 2010년 미국에서는 주식 트레이더가 20분 사이에 주식을 40억달러어치 매도해 전체 시장이 5%나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무려 1억2000만달러가 거래비용으로만 날아간 것으로 분석됐다. 매도를 20분이 아닌 3시간에 걸쳐서 했다면 시장 충격도 거래비용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거래비용'과 관련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에선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 같은 대형 펀드는 거래하는 방법에 따라 시장 충격이 달라지고,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거래비용에도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연기금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면, 너무 잦은 매매를 지양하고, 매매 기간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연기금 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이 완화 또는 회복된 후 그 다음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거래비용'이란 기관 투자에 한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개인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만 투자하는 '쏠림'이 나타날 때에도 적지 않은 거래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주가 움직임보다 2배 이상 레버리지가 발생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쏠림 투자가 나타나면 과거 닷컴버블 붕괴가 재현될 위험도 충분히 있다.

▶▶ 앨버트 카일 교수는…

△1952년 미국 멤피스 출생 △데이비드슨칼리지 수학과 학사 △옥스퍼드대 머튼칼리지 수학·철학 석사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1981년 프린스턴대 공공경제학 교수 △1990년 UC버클리 경영대 재무학 교수 △1996년 모건스탠리 컨설턴트 △2002년 듀크 경영대 금융경제학 교수 △2006년 메릴랜드대 재무학 교수

[이유섭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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