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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TF현장] "헌재를 은밀히 공격하라" 특명받은 대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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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닫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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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 판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지시로 내부 정보 빼낸 혐의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함께 5대 헌법기관장으로 꼽힌다. 특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최고 법원으로서 지위를 놓고 해묵은 자존심 싸움을 벌여왔다.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현직 법관들이 줄줄이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되며 대법원이 헌재를 불법으로 견제하려던 정황이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은 이규진(58)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그 핵심으로 지목된다.

서울중앙지법 제32형사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이규진 전 위원 외 3명의 전·현직 법관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규진 전 위원은 2016년 헌재보다 대법원이 먼저 평택·당진항 매립지 귀속 소송 선고를 내리도록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당시 이 매립지 소송은 헌재와 대법원이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서 제시된 이규진 전 위원의 2016년 3월 업무일지가 증거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게 "헌재보다 대법원이 규모나 인적 자원 면에서 우위다. 이를 잘 활용해 은밀히 공격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규진 전 위원은 당시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헌재에 파견된 법관 최모 씨에게 헌재 내부사항을 보고하도록 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은밀히 공격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검찰은 "이 전 위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 헌재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며 "파견법관 최씨에게 헌재에만 보관 중인 비공개 정보를 전달받고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2) 전 대법관에게 전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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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 정점으로 지목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을 허가받은 22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남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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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법정에서 이규진 전 위원 바로 앞 피고인석에 앉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2016년 이 전 위원과 함께 통진당 국회의원직 확인 행정소송에 개입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다. 또 두 사람은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선숙,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에 대한 재판부의 심증을 미리 파악해 같은 당 관계자에게 알려준 혐의도 받는다.

이민걸 전 실장의 변호인은 헌법 제103조를 근거로 의뢰인의 결백을 주장했다.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은 각 재판 사무 및 법관을 감독할 권한이 있습니다. 현행 형사법은 의뢰인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증명할 근거가 없습니다. 법관의 양심에 재판을 맡긴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만이 법관의 직무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헌법 제103조의 내용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것이다. 판사 고유 권한인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다. 변호인은 이민걸 전 실장의 행위는 형법 제123조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규정한 권리행사방해 죄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고 항변했다.

일선 재판부에 재판 진행상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판결이 불리하게 나자 항소심 재판부를 배당하는데 관여한 이 전 실장의 행동이 헌법이 규정하는 재판장의 양심을 얼마나 '방해'를 했는지 미지수라는 주장이다. 당시 통진당 재산 가처분 사건정보를 이 전 실장에게 넘긴 광주지방법원 재판부의 행위 역시 "이 전 실장의 지시에 동의한 부장판사가 정당하게 보고한 것"이라며 "이 전 실장의 지시로 재판이 중단된 것도 아니다. 판사의 독립적 재판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민걸 전 실장은 이밖에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이던 판사 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 등의 활동을 방해한 혐의도 받는다. 이날 방창현(57) 전 전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심상철(62) 전 서울고등법원장 등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다음 기일은 8월 22일 오전 10시로,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순서대로 서증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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