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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책과 미래] 데이터 문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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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화에는 사유할 권리가 필요합니다." 이화여대가 2020년부터 '컴퓨팅과 수리적 사고'라는 과목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학생들이 써 붙인 대자보다. 필수교양에서 '고전 읽기와 글쓰기' 과목을 '우리말과 글쓰기' 과목과 하나로 합치고, 코딩 관련 과목으로 대체하기로 하자 학생들이 반발한 것이다.

'지성의 보루'로서는 전혀 든든하지 못하고 부박한 유행을 좇는 데는 귀신같은 대학의 평소 행태를 생각할 때 학생들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대학의 저런 발상이 무사유한 '코딩 몰빵'에, '인문학 무용론'에서 나왔을 가망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수업 운영도 '수리적 사고법' 자체에 집중하기는커녕 몇 가지 개념 학습에, 간단한 실습 위주로 뚝딱 때울 확률이 크다. 학생들이 한 학기 수업을 들었다는 것뿐이지 대부분 '코딩 언어'를 알아들을 수조차 없을 게 명약관화하다. 문해력(literacy)이 가장 중요한 인간 능력으로 떠오른 세상에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사유하는 고전 읽기를 없애고, 얼치기 코딩 수업을 도입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학의 예상되는 행태를 괄호 치고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할 때, 한 가지 질문이 가슴에 남아 찜찜하다. '수리적 사고'는 왜 '사유할 권리'에 해당되지 않을까. 정보과학의 힘이 지배하는 현재의 생활세계를 고려할 때, 수리적 사고 역시 학생들 누구나 갖춰야 할 필수 역량이긴 하다. 코딩을 가르쳐 수리적 사고능력을 기를 수 있다면, 바라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를 시도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코딩으로 익힐 수 있는 수리적 사고는 '알고리즘 사고'에 주로 국한되므로 필수로까지 삼는 건 분명히 지나치다.

수리적 사고와 관련해 전체 학생들에게 반드시 가르칠 부분이 있다면, '코딩'보다 '데이터 문해력'이다. 오늘날 우리는 데이터 세계를 살아간다. 여론조사에서부터 각종 경제 통계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데이터를 마주친다. 또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분석해 한 사회의 깊은 움직임을 파악하고 심지어 개인의 내밀한 취향까지 알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대량살상 수학무기'(흐름출판)에 따르면 "수학, 데이터, 정보기술(IT)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알고리즘들"은 자칫 "인간의 편견과 무지, 오만을 코드화"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 뉴스'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에 쏟아지는 데이터들을 읽고 분석하고 한계와 진실성을 분별하며, 더 나아가 스스로 데이터를 창조할 능력이야말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수리적 사고를 필수로 여긴다면, 컴퓨팅 쪽이 아니라 데이터 문해력을 가르치면 어떨까 싶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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