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한 이유가 따로 있지는 않았다. 살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귀찮았다. 그때 나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매일 불면의 밤을 보냈다. 술에 의지하는 날이 많았다. 기사가 잘 써지지 않아 나 자신을 책망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참으로 못났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나를 탓했다. 자책의 반작용으로 항상 나 자신을 완벽하게 무장해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조금의 농담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고, 시야는 좁을 뿐이었다. 살구는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도형 산업부 기자 |
올해 4월, 다시 드리우는 살구꽃을 보면서 마음의 변화를 생각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어쩌면 마음이 마지막으로 준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살구를 한두 개씩 바구니에 담았다. 인터넷을 뒤져 서투르게 살구 잼을 만들었다. 솔직히 썩 맛있지는 않았다.
그때 서투름으로도 마음에 기쁨이 피어오를 수 있다는 생소한 감정을 알았다. 무엇인가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뿌듯함을 느끼면서다. 수확으로 감정은 충만해지고 마음이 따듯해짐을 알았다. 두 번째 생소한 감정은 살구 잼을 나눠주면서 알았다. 작년부터 탄수화물을 줄이기로 결심하면서 정작 잼을 만들었지만 먹을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줬다. 같이 사는 세입자에게 줬고,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에게 나눠줬다. 칭찬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었다.
특별한 의도 없이 한 일에 기쁨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사람들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는 말을 해줬고 감사했다. 그 표정을 보았을 때 문득 마음이 열렸다. 내가 뭔가를 주고도 남보다 기쁜 감정을 느낀 게 처음이었다. 선물을 주거나, 받은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항상 계산을 했다. 나한테 돌아올 감사의 총량을 계산해 선물을 줬고, 받을 때도 꼭 그만큼 감사했다.
이제야 나의 행동이 보잘것없어도 내 마음을 얼마든지 채울 수 있고, 그때 찾아오는 행복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았다. 그 전까지는 나 자신이 대단하고 그렇게 될 것임을 확신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나 스스로가 ‘마음의 빈곤’을 감춘 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발버둥 쳤을 뿐이었다. 비로소 내가 그동안 얼마나 비루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았다. 이제는 안다. 나는 대단하지 않으며 그저 보통의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은 대단하다.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드디어 기뻐졌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도 그렇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살구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이도형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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