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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현장에선] 박원순과 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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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이 높아지고 경제가 성장하려면,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주거를 제공해야 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달 초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밝힌 주택 정책이다. 박 시장이 부동산을 보는 시각은 우리 사회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보면 ‘좌향좌’에 가깝다. 시장 자율보다 막대한 세금을 동원한 공공부문의 적극 개입을 주장한다. 박 시장은 “중산층한테까지 공공임대를 제공하면 부동산 투기가 있을 수 없다”고 장담했다. 이런 철학에서 나온 정책이 서울시의 공적임대주택 32만가구 공급이다. 공공임대가 전체 주택의 10%선을 넘어가면 부동산 가격 인상의 방어기제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게 박 시장의 기대다.

세계일보

송은아 사회2부 차장


‘보금자리는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참 달콤한 말이다. 선거철 단골 ‘공약’(空約)이기도 하다. 약속은 번번이 무산됐고, 무주택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커져 왔다. 그래서인지 박 시장의 부동산 정책도 다소 이상적으로 들렸다. 집이 세속적 욕망의 집합체가 된 서울에서 임대 확대가 가격 안정을 부를 수 있을까. ‘깔고 앉은 내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문장은 부동산 구매를 부추기는 정언명령이 되지 않았나. ‘휴거’(휴먼시아+거지) ‘빌거’(빌라+거지)처럼 폭력적·차별적 신조어가 나타나는 세태 속에 공공임대가 대안이 될지 회의적이다.

공공임대 확대는 재정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임대사업에 따른 누적 적자를 떠안고 있다. 차곡차곡 쌓인 적자를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일까.

부동산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임대를 늘리는 건 꽉 막힌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공공임대를 늘리면 민간임대가 줄어들어 전체 임대 공급이 축소되고, 결국 서민이 더 어려워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공공임대의 ‘낙인효과’도 있다 보니 선진국에서는 주거비 보조로 많이 선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대 확대’를 지지하는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조건을 걸었다. 기존 거주민들이 공공임대 입주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생 방안’ 조성이 필수라고 했다.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점은 ‘소통 부족’이었다. 심 교수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등 박 시장의 주택 정책을 보면 전문가 몇 명에게 물어보고 결정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권 교수는 “박 시장이 소통할 대상은 진보와 재야가 아닌 보수와 기존 층인데, 이 정부는 그저 밀어붙이고 대화 안 하는 게 특징”이라고 우려했다.

사실 박 시장은 ‘소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다. 그러나 한쪽 눈을 가린 소통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이상’에 매몰된 탓이다. 주택 정책만이 아니다. ‘제로페이’ ‘녹색 교통’ 등 굵직한 정책 상당수가 그렇다. 정책 의도는 선하지만 주택 소유자, 신용카드 이용자, 승용차 운전자의 욕구까지 헤아리고 대화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박 시장의 부동산론을 대하면서도, 주거 복지라는 ‘이상’을 좇다 보니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장삼이사들이 만드는 시장의 ‘현실’은 소홀히 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송은아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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