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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한·일 對美 여론전, 어느 쪽이 앞서가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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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보복 놓고 한·일, 미 조야 상대로 치열한 여론전

세계일보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미국 조야를 상대로 치열한 여론전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 따라 이번 싸움이 판가름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아직 철저한 중립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경제계와 외교가에서 한·일 간 분쟁이 몰고 올 정치적, 경제적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의 전문가들과 주요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 무역 보복을 벤치마킹한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16일(현지시간) “일본이 자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경제 전문 방송인 CNBC는 이날 “한·일 분쟁이 글로벌 공급 체인을 훼손하고, 그에 따른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일본의 행위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한 전문가 기고문을 게재했다. 뉴욕 타임스(NYT)도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관세 폭탄·수출제한 조치를 휘둘러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따라 하고 있고, 이는 수십년간 무역 및 경제성장을 떠받쳐온 글로벌 무역 규칙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CNBC의 경고

CNBC는 한·일 간 분쟁이 승자 없는 패자 게임이라고 진단했다. 이 방송은 “한국과 일본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행위로 오랫동안 정치적 불화를 겪어왔고, 이 분쟁이 이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따라 경제 영역으로 확산했다”고 지적했다. CNBC는 “한·일 분쟁이 글로벌 기술 산업계 전반에 나쁜 뉴스가 될 수 있고, 결국은 제품 소비자가 더 비싼 값을 내야 하는 사태로 귀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타이머 베이그(Taimur Baig) DBS 그룹 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이 방송에 “지금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글로벌 경제 분위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고, 이를 교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수년 동안 서로 뒤얽힌 공급 체인을 형성해왔고, 이제 양국 간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이를 재정립하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고 그가 지적했다. 베이그는 “이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트로이 스탠가론 한미경제연구소(KEI) 선임국장은 “한국 반도체 제조업체가 일본의 수출 제한에 따라 생산량을 줄이면 반도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탠가론 국장은 “미국이 중국과 기술 사용 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한·일 간 분쟁으로 인해 중국의 국영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제스퍼 콜 위즈덤트리 인베스트먼트 선임 고문은 이 방송에 “일본의 수출 제한으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될 전체 제품의 가치는 4억5000만 달러 미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콜 고문은 중국이 일본의 첨단 기술을 당장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 제품이 일본 제품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포린 폴리시의 진단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날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국제 통상 전문가로 이 전문지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네이탄 박 변호사가 일본을 강력히 비판한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일본의 무역 전쟁은 트럼프의 무역전쟁처럼 무익하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일본의 역사 울화증이 자해 행위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그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을 떠오르게 한다”면서 “이것은 불확실하고, 자기 모순적이며 이 과정에서 국내 및 국제 경제에 잠재적인 해를 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2017년부터 과거사와 한·일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하는 투 트랙 전략을 사용해온 것은 사실이고, 이런 이유로 일본이 역사 이슈에 경제 카드를 사용한 것은 한국인에게 급격한 확전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과의 경제 연결 고리를 풀어버리면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손을 잡을 수도 있어 이것이 한·일 관계뿐 아니라 한·미·일 삼각 동맹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지역이 중국과 북한의 안보 도전에 직면해 있어 한·미·일 삼각 동맹의 약화는 세계에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제안

워싱턴 포스트는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을 지낸 에번 메데이로스 조지타운대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양국 간 분쟁 중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메데이로스는 ‘아시아에서 위기가 전개되고 있고, 미국은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행위자’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간 분쟁을 방치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과 일본은 사이가 매우 멀어졌고, 이 갈등은 미국 동맹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지역 번영과 글로벌 공급망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과 중국이 제기하는 지역 안보 문제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단결을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진핑 치하의 중국은 아시아 전역, 특히 해상 영토 문제에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왔고, 시 주석은 미 동맹국의 제약이 없다면 아마 더 많은 것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데이로스는 “일본의 조치는 외교적 보복을 위해 특정 산업에 대해 법적 근거가 의심스러운 일방적인 제재를 시행하는 위험한 관행을 정당화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측 조치가 세계 무역관행에 비춰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양측이 귀를 기울일 유일한 국가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한·일 두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시작하도록 권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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