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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명성교회 세습이 '고통의 십자가' 아닌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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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세습을 하고 싶으면 ‘명성’에서 이제 ‘교회’란 말을 떼어 버리십시오!”(교회개혁실천연대 김정태 집행위원)

16일은 ‘명성교회 부자 세습’의 불법 여부 판결이 예고된 날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은 지난해 총회에서 ‘김하나 위임목사 청빙 결의 무효 소송에 대한 재심’을 결정했다. 교단 총회 헌법(28조6항)에 ‘세습 금지’가 명문화돼 있는 만큼 이날 재판국의 판결은 개신교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만약 ‘명성교회 세습이 교단 헌법을 위배했다’는 판결이 내려질 경우 명성교회는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부자 세습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교단에서 아예 탈퇴를 해야 한다.

중앙일보

16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앞에서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명성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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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예장통합 총회 건물 앞에서는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우려 섞인 성명서를 발표했다. “총회 재판국이 심리만 할 뿐 재판은 하지 않는 미온한 태도를 보인다”“재심이 미루어지는 동안 명성교회 불법 세습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교단 전체 구성원의 뜻을 모으는 지난해 총회에서 ‘명성교회 세습에 대한 불법 여부 재심’이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3개 노회는 “교단 헌법에서 ‘세습 금지’항목을 삭제하자”는 개정안을 올해 총회 안건으로 상정해 놓은 상태다.

아니나다를까 교단 재판국은 이날 ‘명성교회 세습’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7월16일에 최종 판결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저버렸다. 결국 판결을 못내린 채 다음달 5일에 재논의키로 했다. 개신교계의 한 목사는 “명성교회의 물밑 작업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9월에 열리는 올해 교단 총회에서는 직접적 사항인 ‘명성교회 부자 세습의 위법성’보다 간접적 사항인 ‘세습금지 조항 삭제 여부’를 놓고 논쟁이 붙게끔 패러다임을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교단 관계자는 “재판국이 부담을 느껴 올해 총회로 공을 떠넘기고, 총회에서 다시 재판국으로 공이 넘어갈 모양새”라며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이 아무도 없는 셈이다. 부끄러운 현실이다”고 한탄했다.

중앙일보

16일 장로회신학대학교총학생회 김주영 총학생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의 믿음의 선배 본 회퍼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친 버스 운전기사를 우리가 끌어내리는 것이 버스에 타고 있는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며 명성교회 세습을 비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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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는 ‘부자 세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세습금지법에는 ‘은퇴하는’ 목사에게 적용된다고 돼 있다. 그러니 ‘은퇴한’목사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김삼환 원로목사는 이미 은퇴한 상태다”라고 반박한다. 명성교회 논리를 따르자면 모든 교회의 담임목사가 은퇴한 후에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교회 세습이 당연시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뿐만 아니다. 교회 세습의 근거로 성경적 진리도 거론한다. 고세진 목사는 명성교회 주일예배에 초빙돼 설교에서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이 승계했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예수님이 받아서 했다. 만약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가 끊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며 “왜 (김삼환) 원로목사하고 (김하나) 담임목사를 갈라놓으려고 하는 것인가. 일치단결해서 우리는 이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눈으로는 ‘세습’이지만, 성경적 눈으로는 ‘승계’라는 해명이다. 게다가 명성교회는 “등록 교인 수 10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다. 아무나 이끌고 갈 수가 없다. 김하나 목사가 담임을 맡은 건 ‘특혜’가 아니라 ‘십자가’를 진 것이다”고 말한다.

중앙일보

명성교회를 개척한 김삼환 원로목사와 아들 김하나 목사 [사진 명성교회]



성경 속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는 어김없이 에고가 죽는다. 교회 세습은 내 안의 에고를 키우는 일이다. 그러니 십자가가 될 수 없다. 명성교회의 세습은 십자가가 아니라 내 안의 욕망이 남기는 흉터일 뿐이다.

백성호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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