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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설왕설래] 금값과 달러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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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페르세우스. 그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半神半人) 영웅이다. 올림포스산의 주신 제우스와 아르고스 왕국의 공주 다나에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의 여신 아테네의 도움을 받아 괴물 메두사를 죽였다. 메두사의 머리를 자루에 담고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바위에 묶인 아름다운 여인 안드로메다를 구한다. 복수에 나선 메두사의 자매들. 그는 투구를 뒤집어쓰고 몸을 감췄다.

페르세우스의 황금 투구. 개가죽 투구라고도 한다. 위험이 닥치면 투구를 써 몸을 숨긴다. 위험에서 벗어나는 투구. 그것은 신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황금. 금본위 제도가 폐지됐지만 금은 아직도 가치를 재는 척도요, 위험을 회피하는 수단이다. 금값과 경제. 반비례한다. 불황의 나락이 깊을수록 금값은 날개를 달고 치솟는다.

홍콩의 금값은 한 달 새 6.2%, 올 들어 11% 뛰었다. 6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2008년 세계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든 금융위기와 이어 터진 유럽 재정위기. 그 위기가 가라앉으면서 내린 금값은 다시 치솟고 있다. 뉴욕·런던시장의 금값도 연일 뛴다. 세계 경제의 위태로운 실상은 금값만 보고도 알 수 있다. 금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달러화다. 미국의 신용을 바탕으로 금과 똑같은 ‘안전자산’을 이룬다.

우리 경제는 더 어렵다. 빠른 속도로 침체 늪으로 빨려들고 있다. ‘반시장’적인 소득주도성장 구호에 멍들고, 미·중 무역분쟁도 모자라 일본의 경제보복 충격까지 덮쳤으니. 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KEB하나·농협은행의 골드바는 올 상반기에만 324억원어치 팔렸다. 작년보다 91.5% 늘어난 액수다. 거주자 달러예금 잔액은 6월 말 현재 599억달러(약 70조6000억원). 한 달 새 42억5000만달러 불어났다.

썰물처럼 안전자산으로 옮겨가는 시중 자금. 외환위기 악몽을 되새기는 걸까. 분명 위기 징후다. 청와대는 또 이런 말을 할지 모르겠다. “불안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라고. 외환위기 때는 무슨 말을 했을까. 그런 ‘속 빤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때 정부는 금융개혁과 고비용 타파를 부르짖었다. 그래도 나라 부도를 막지 못했다.

금값을 믿어야 하나, 빤한 정부 말을 믿어야 하나.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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