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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최갑수의맛깊은인생] 종잡을 수 없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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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일전에 이탈리아 마르케를 여행한 적이 있다. 마르케는 동북부에 자리한 주(州)로 푸른 아드리아해와 마주하고 있다. 열흘 동안 마르케를 여행하며 수비드로 요리한 송아지, 스테이크와 야생 사과로 만든 잼, 나무 오븐에 구운 빵, 염소 치즈를 얹은 파스타를 먹었다. 밀가루 1㎏당 계란 노른자 40개를 넣어 반죽한 탈리아텔레는 부드러운 식감과 풍미가 일품이었다. 이탈리아의 찬란한 햇살 아래에서 마시는 와인은 인생이 일만 하며 보내기엔 너무 짧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와 있다. 잘츠부르크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다. 모차르트의 생가는 종일 관광객으로 붐빈다. 잘츠부르크의 날씨는 좋지 않아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걷다 지치면 카페에 들어가 아인슈페너를 마신다. 아인슈페너는 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로 오스트리아에 오면 으레 마시지만 오스트리아가 아니라면 굳이 마시고 싶지 않다. 커피에 왜 크림을 얹어야 하는 것일까.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다지 권할 맛은 아니다.

잘츠부르크에 온 지 나흘째, 그동안 많은 음식을 먹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들으며 먹었던 ‘모차르트 디너’, 치즈 덩어리를 넣은 수프가 나왔는데 너무 짜서 입에 대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본고장에서 직접 듣는 모차르트 음악은 너무 좋았다. 스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해발 2000m 오두막집에서는 팬케이크를 잘게 썰어 넣은 수프를 먹었다. 수프에 팬케이크를 넣을 생각을 왜 한 것일까 하고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눈앞에 펼쳐진 알프스의 장관이 수프 속에서 퉁퉁 불은 팬케이크의 끔찍함을 잊게 해주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돈가스 비슷한 슈니첼, 송아지 고기를 망치로 두들겨 연하게 만든 다음 밀가루와 달걀 등을 묻혀 튀긴 요리다. 슈니첼은 매일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었지만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기에 세 번이나 먹었다. 감자튀김 위에 마른 수건처럼 놓여 있는 슈니첼을 나이프로 자를 때마다 나는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먹었던 흑돼지 돈가스를 떠올렸다. 당시 두툼한 지방과 살코기가 어울린 고소한 맛을 혀끝으로 떠올리며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돈가스집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알프스의 눈부신 풍경 앞에서 모차르트를 들으며 먹는 슈니첼, 하지만 고기는 질겨서 가끔 나이프가 어긋나기도 했다. 결국 세 번째 슈니첼은 반쯤 먹다 포기해야만 했고 그나마 시원한 맥주가 위안이었다.

이렇듯 누군가는 멋진 날씨 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유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마른 낙엽 같은 음식을 먹고 있으니 세상은 때론 불공평하기도 때론 공평하기도 한 게 아닌가 싶다.

최갑수 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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