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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기고]제헌절, 공화주의의 회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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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71주년 제헌절이다. 제헌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냥 평범한 날이다. 경제 불황으로 일상이 힘든 사람들에게 헌법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주요 언론도 연일 경제성장률과 고용 문제만을 강조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헬조선’의 현실은 상당 부분 정치의 문제, 특히 자유주의를 제어할 공화주의의 실종에 기인한다.

경향신문

한국은 지난 100년간 식민의 치욕,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기적의 역사를 썼다. 특히 시장경제가 이룬 성과는 눈부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 최빈국을 11대 경제 강국에 올려놓았고, 50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로서 3만달러 이상의 국민소득을 갖는 3050클럽에도 7번째로 가입했다. 평범한 국민 개개인 모두의 힘과 희생으로 이룩한 성취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부유한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는 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할까? 사회·경제적 양극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신뢰와 공동체의 붕괴로 각자도생하는 현실 속에 국가의 존재는 너무 멀다. 더욱이 디지털 혁신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주도하는 미래는 우리가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시장경제는 미래를 향해 바쁘게 나아가지만 우리를 태우고 가야 할 정치와 사회는 그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꾸려갈 희망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재분배가 실행되지 않고 있다. 사실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지난 35년간 절대적 빈곤 인구는 줄고 신흥국과 선진국 간 경제적 격차도 축소되었지만, 국가 내 불평등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피케티 교수는 정치·이념적 대립 구도가 다차원적으로 변화된 것에 주목한다. 이것은 공화주의의 실종으로 설명된다. 어떤 가치를 중시할 것인지 합의를 이루고 공동의 이익과 가치를 바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구성원을 결속시키는 공화의 상실은 신자유주의의 발흥으로 연결되었다. 정치의 무능이 비단 분배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화주의의 복원은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공화의 정신은 제헌헌법 이래 헌법의 요체인 민주공화국에 포함되어 있고, 민주공화국은 임시의정원이 1919년 4월11일 채택한 임시헌장 제1조에서 유래한다. 공화국은 ‘공적인 것’이라는 라틴어 레스 퍼블리카에서 유래한 것으로 협의로는 비군주국을 의미하지만, 광의로는 공동체의 요청에 따라 공공복리에 봉사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공화주의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공동체주의와는 다르다. 공공성과 법치주의, 공감과 연대의 가치, 책임윤리를 강조한다. 물론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공공성 회복으로의 가치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토론을 통한 일련의 사회적 합의, 그를 위한 민주시민 역량 강화와 협치·대화의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의식으로 정치적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대의식을 공유하게 될 때 대한민국은 지난 100년의 기적을 넘는 새로운 기적을 만들 것이다. 100년 전 민국(民國)을 외치면서 민주공화제를 헌장에 명시한 선조들의 열정이 다시 우리 평범한 개개인의 마음에 살아나는 제헌절을 꿈꾼다.

하정철 |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전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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