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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 (토)

“게임업계, 수익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 확대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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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게임중독 (하)

질병 분류 반대하는 이용자들도 ‘중독 예방 정책 필요’에는 공감

“업계 사회적 기여 늘어야” 66%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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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 이용자 절반 이상이 게임업계의 사회적 책임 확대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커지는 수익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게임업계에 전향적 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에 반대하면서도 게임중독 예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5일 경향신문과 비영리단체 ‘공공의창’이 공동기획하고 여론조사기관인 ‘우리리서치’가 게임 이용자 5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숙의형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게임 이용자들 중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찬성하는 사람은 99명(19.7%)이었고 반대는 311명(62.0%)이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경우는 69명(13.7%),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3명(4.6%)이었다.

게임 이용 수준별·세대별 의견 차가 극명했다. 게임을 하루 1시간 정도 즐기는 이들 중 64.1%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에 반대했으며, 찬성은 16.2%에 불과했다. 이는 ‘게임을 스스로 조절해서 하면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하루 3시간 이상 하는 이들은 48.4%만 질병 분류에 반대했으며, 30.8%는 찬성했다. 이들은 게임을 장시간 이용하며 일부 부작용을 경험하고 게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 또 게임 이용자들 중에서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대해 20대는 70.5%가 반대했고 50대는 65%가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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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에 반대하는 이들도 중독 예방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게임 이용자의 46.2%가 게임중독 예방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이 같은 응답자 중 51.4%는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에 반대하는 이들이었다.

‘게임업계의 사회적 기여가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전체 게임 이용자의 66.1%에 달했다.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게임업계가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과몰입 치유 활동에 대한 지원은 충분히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최정묵 공공의창 간사는 “게임 이용자들도 게임업계의 사회적 기여가 미흡한 현실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부작용 경험했나…게임 이용시간 길수록 ‘질병 분류’에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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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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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공공의창, 게임이용장애 설문조사

20대 71%가 반대, 50대 65%가 찬성…연령별 찬반 ‘뚜렷’

입장 유보·감성적 답변 많아 정확한 판단 위한 ‘정보’ 필요


경향신문과 ‘공공의창’의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게임을 오래하는 사람일수록 찬성 의견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하루 1시간 게임 이용자의 찬성률은 16.2%였지만 3시간 이상 이용자는 30.8%에 달했다. 연령대별로 찬반 의견이 선명하게 나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대의 경우 찬성 12.1%, 반대 70.5%로 나타난 반면, 50대는 찬성 65%, 반대 15%로 정반대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이는 게임을 주로 즐기는 세대와 일상의 유지를 중요시하는 부모세대가 대립하는 현재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에서는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에 대한 게임 이용자들의 기본적인 의견을 묻고, 이들을 충분한 반론에 노출시킨 뒤 당초 의견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는 숙의형 여론조사도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들의 현재 의견들은 바뀔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를 발표한 시점이 지난 5월인 만큼 본격적인 여론이 형성되기 전 단계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게임장애를 보는 시각 ‘변화 중’

게임 이용자 502명 중 게임장애의 질병 분류에 반대하는 이들은 311명이었으며 찬성은 99명, ‘둘 다 아님’(입장 보류) 69명,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3명이었다.

하지만 숙의 과정에서 모두 98명(19.5%)이 의견을 바꾸었다. 의견을 바꾼 이들은 주로 판단을 보류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숙의 이후 반대 의견은 311명에서 306명으로, 찬성은 99명에서 91명으로 줄었다. 반면 ‘둘 다 아님’은 69명에서 79명으로, ‘잘 모르겠다’는 23명에서 26명으로 늘었다.

특히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에 찬성하는 이들은 반론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찬성하는 이들 중 “게임중독은 아직 판단 기준이 모호하기에 질병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이들은 62%에 달했다. “게임산업을 위축시키고 많은 문화콘텐츠 산업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질병으로 등록하면 안된다”는 의견에도 절반이 넘는 55.1%가 공감했다.

반면 질병 등록에 반대하는 이들은 찬성 측보다 반론의 영향을 덜 받는 모습을 보였다.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질병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의견에 21.8%가 공감했으며, “(질병 등록이) 건전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고 게임산업 발전과 게임 이용자의 생산적인 일상생활에 도움을 줄 것”이란 의견에 20.6%가 공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향후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개개인이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정보가 충분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사를 수행한 유봉환 우리리서치 대표는 “응답자들이 찬반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측면도 있다”며 “아직 사안에 대한 입장이 뚜렷하게 형성돼 있지 않고 판단 근거도 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정확한 정보 기반한 공론화 필요

게임 이용자들은 다만 향후 정책 방향을 정할 때 대중들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달 중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게임업계, 의료계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출범시킬 예정인데, ‘전문가들의 논의’로만 끝나선 안된다는 것이다.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 중독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을 위해 공론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에 286명(57%)이 동의한다고 밝혔으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공론조사를 제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301명(60%)이 동의했다.

최정묵 공공의창 간사는 “숙의 결과 찬반 양론보다는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늘어나는 추세를 볼 수 있었는데, 이를 보면 당장 찬반을 가리는 것보다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해당사자들이 어떤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형성하고 있는지, 그 근거는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판단하게 하고, 충분히 논의해 개선된 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론조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는 것이다.

■ “피해자 치료에 중점…‘중독자’ 낙인찍을 의도 없어”

질병 분류 찬성자들 “과몰입 피해 막기 위한 취지 안 알려져”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번 조사 결과에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임중독 질병 분류는 낙인이나 편견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게임 과몰입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당초 취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 제공이 필요한 이유이다.

게임 과몰입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는 과몰입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것에 중점을 맞춘 것인데, 그간 게임업계 입장에서 나온 기사들은 WHO 결정이 마치 기존 게임 이용자를 ‘중독자’로 낙인찍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다”며 “이 때문에 대다수 게임 이용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고 반대 입장도 강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증상이 있는 청소년은 정신의료기관으로 가야 하고, 이 경우 진료기록이 남아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학부모들로 구성된 ‘게임·스마트폰 중독예방 시민연대’ 김은숙 상임대표는 “우리 단체 학부모 중에는 정신과에 가는 걸 우려하는 이들보다 게임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먼저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로 게임산업에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잠재적인 게임산업의 피해자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게임이용장애 논란 이후 일부에선 ‘게임중독세’로 정부가 게임회사의 돈을 뜯어가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지만, 이런 규제가 이뤄질지는 별도의 문제”라며 “또 실제 이런 규제가 생긴다 해도 돈을 내는 것은 주로 대형 게임업체일 텐데 게임 이용자들이 수천억원씩 이익을 내는 회사를 걱정해야 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로 본인들이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혜택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면 정부에서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할 수 있고, 현재 국내에서 이에 맞는 예방이나 치료 시스템이 제공되고 있는지 판단하고 보완할 수 있다”며 “또 게임의 문제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면 게임 이용자들의 소비자 권리 확보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창’은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리서치DNA·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타임리서치·한국사회여론연구소·한국여론연구소·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세종리서치·현대성연구소·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4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2016년 만들어졌으며,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조사를 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공익성 높은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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