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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 (토)

[단독]‘전자법정’ 판사 책임 덮고, 대법원 ‘스마트법원’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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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치적용’…정부에 예산 2752억원 요구

일부 판사들 “재판 본질 훼손…일방적 추진” 문제 제기

경향신문

김명수 대법원장(사진)이 임기 마지막 해인 2023년 완성을 목표로 3000억원 가까운 국가예산을 쓰는 스마트법원 4.0 사업을 강행키로 했다. 김 대법원장의 스마트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상고법원과 마찬가지로 법원 안팎의 합의가 없는 치적용 사업으로 평가된다. 법원 공무원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되는 등 재판 결과로 확인된 1000억원대 전자법정 비리에 대해 책임자인 판사들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김 대법원장이 치적용 사업을 강행하는 것이다.

대법원이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대법원 2020년도 예산요구서’를 보면, 대법원은 스마트법원 4.0 예산 2752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사업추진 선언에서는 비용을 3054억원이라고 했다가 이후 전자법정 비리가 불거지자 10%가량 줄여 제출했다. 초기 비용 2752억원 외에도 1190억원이 유지·보수비로 5년마다 들어간다고 대법원은 예산안에 적었다. 사업명에 들어간 4.0은 사업을 포장하려 대법원이 의미 없이 붙인 것이다.

스마트법원 4.0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대법원은 “법정에 나갈 필요 없는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산요구서에서 대법원은 “온라인 재판 도입, 모바일 서비스 전면개편 등 법원 출석이 필요 없는 사법서비스, 어렵고 복잡한 소송절차를 지능형 도우미를 통해 쉽게 ‘N클릭’만으로 완결”한다며 “법관의 불필요한 업무를 경감시키고, 심리에 집중(할 수 있는) 충실한 재판 진행여건을 마련하여, 형식적, 절차적 업무에 대한 자동화 등 지능형 법원으로 전면 개편(할 것)”이라고 했다.

판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계획이라고 반응했다. 한 고등법원 판사는 “엄격하게 절차를 규정한 소송법도 고치지 않고 그런 (스마트) 재판이 가능한지 매우 의심스럽다”면서 “직접 심리라는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시도를 국토가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지방법원 판사는 “온라인 재판은 기존 법원의 재판시스템이나 양상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문제인데도 법원 구성원이나 법조직역의 의견취합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김명수 대법원장이 3000억원 가까운 국가예산을 쓰는 스마트법원 4.0 사업을 강행키로 했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전산정보관리국은 지난 10년 동안 전자법정 입찰비리를 저질러온 것으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드러났다.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국이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법원전산정보센터의 지난 2일 모습.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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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스마트법원 4.0 도입으로 10년 동안 얻을 편익이 5조39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천억원의 세금으로 사들일 전산장비들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사들은 예상한다. 실례로 대법원은 원격영상 증인신문을 하겠다며 국가예산 52억원을 썼지만, 2017년 도입 이후 지난해까지 1년6개월 동안 원격영상 증인신문은 단 10건 실시됐다. 시범사업 이후 접수된 1심 민사본안 150만여건만 기준으로 잡아도 전체의 0.000067%에 불과한 수치다.

국가예산 3000억원을 사용할 법원행정처가 지난 10년 동안 입찰비리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점도 문제다. 전자법정 비리는 경향신문의 탐사보도로 드러나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은 이곳 공무원들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는 등 15명을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책임자인 판사들은 경고조차 받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전산장비 사업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전산정보 전문가가 아닌 판사에게) 지휘·감독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사안”이라고 했다. 따라서 스마트법정 4.0 사업에서 비리가 저질러져도 책임질 사람이 없는 셈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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