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통미봉남’으로 회귀하는 北을 보며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에 언론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답하기조차 민망스럽다. 북한의 고위관리들이 ‘정부’와는 다르게 자신들의 입장을 말할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도 마찬가지다. 정상 국가의 공무원들도 자신들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북한의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입장을 자유롭게 공개 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요사이 북한이 이른바 국장급 명의로 발표하는 담화와 선전 매체들의 논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7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은 조선중앙통신에 담화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7월 6일 보도된 바에 따르면, 북한은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한국은 핵 관련 논의에서 빠지는 게 좋겠다”라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급기야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3일 “우리로서는 미국의 승인 없이는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상대와 마주 앉아 공담하기보다는 남조선에 대한 실권을 행사하는 미국을 직접 대상하여 필요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라며 “조미 두 나라가 마주 앉아 양국 사이의 현안 문제를 논의하는 마당에 남조선이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으며 또 여기에 끼어들었댔자 할 일도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핵 담판에서 우리는 빠지라는 것이다. 이를 특정 매체들의 주장 혹은 북한 고위공무원의 자기 생각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북한의 입장은 과연 과거와 달라졌다고 봐야할까? 그건 아니다. 북한은 원래 그런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문재인 정권 들어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그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만 하다라도,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접근 방식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내릴 만 했다. 과거 북한은, 핵 문제는 대한민국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계속 견지해 왔었지만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우리 정부의 중재자 혹은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의 대북 외교력이 상당하다고 평가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북한이 보인 태도는 입장 변화에서 온 것이 아니라 단지 전략상 우리와 대화를 해주는 척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북한이 핵 문제를 접근하는 사고를 바꾼 것이 아니라, 노골적인 위협을 하고 있는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우리를 잠시 ‘이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북한이 미국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기에, 북한이 과거부터 추구해왔던 ‘통미봉남’을 다시 꺼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남북 간의 경협’ 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필요한 돈은 우리와의 경협을 통해 조달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지금 북한의 주장은 우리는 ‘자금 제공처’ 정도의 역할만을 하지, 핵 문제에 관해서는 빠지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우리 정부의 입장도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한반도 운전자론’, ‘북미간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한반도 평화를 구상해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일단은 북한의 그런 주장에 신경 쓰기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 여론과 호흡을 맞춰 국제 공조에 더욱 충실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명분과 실제적 힘을 등에 업고, 북한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입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힘은 국제사회와 미국과의 친밀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