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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취재일기] 정부 자료 사전유출…조국 페북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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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국 민정수석.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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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페이스북을 들여다봤다. 이달에만 11건을 썼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이 한창일 땐 한 달에 30건 넘는 게시물을 올렸다. 쓴 글을 1시간 새 15번 고치기도 했다. 이른 시간대나 점심시간에 올린 글도 있지만 일과 중에 올린 경우도 많다. 고위 공무원 중에선 ‘다작(多作)’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오후 5시27분 ‘日 수출규제조치 WTO 일반이사회에서 논의 예정’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출입 기자단에게 배포했다. 세계무역기구(WTO)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공론화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자료였다.

그런데 해당 자료가 대중에게 먼저 공개된 건 해당 부처나 정부의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아닌, 조 수석의 개인 페이스북이었다. 조 수석은 이날 오후 5시13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료 원문 그대로를 올렸다. 산업부 관계자도 함께 있는 SNS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미리 올라온 자료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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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민정수석이 15일 공식 배포 전 페이스북에 먼저 올린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사진 페이스북]


이런 일은 산업부도 몰랐다.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e메일로 청와대에 전송하는 과정에서 유출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국내 대응과 관련한 자료라 신중히 처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SNS 활동을 가볍게 여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청와대 정책실과 산업부 간 논의를 마치고 조 수석이 ‘즉시 공개’ 결정한 문서란 사실을 보고받은 뒤 페이스북에 올렸다”며 “단순 착오지, 일부러 유출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조 수석은 “혼선을 일으켜 송구하다”면서도 해당 게시글을 내리진 않았다.

산업부는 15일 “보도자료 배포 과정에서 타이밍이 맞지 않다”며 “우리 불찰이 큰 만큼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두고 “청와대 참모의 실수에 대해 정부 부처가 사과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넓게는 공무상 비밀누설죄나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대표변호사는 “비밀 누설에 고의가 있는지 확인할 여지가 있지만 보도 예정인 자료를 조 수석이 먼저 공개한 점은 법률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수석의 ‘페북 활동’이 구설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13일엔 1980년대 운동권 가요인 ‘죽창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일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 수석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썼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의도를 갖고 썼다면 정부의 대일 접근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처음엔 ‘페이스북 하는 민정수석’의 소통 방식이 신선했다. 핵심 정책 방향을 좀 더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소통으로 불필요한 갈등만 불러일으키면서 부작용이 더 두드러졌다.

민정수석은 여론 동향과 민심 등을 파악하고 공직 및 사회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대통령의 참모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 부처가 만든 자료를 해당 부처보다 먼저 공개하는 것이 민정수석이 할 일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도 “(조 수석 스스로) 청와대와 국정을 총괄하는 ‘왕 수석’이라고 인식하는 오만함이 드러났다”고 논평했다. 조 수석이 국민소통수석·경제수석도 아닌 민정수석이라서 와닿는 지적이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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