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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창법도 주법도 바꿨다, 81세 로커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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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의 새 앨범 ‘헌정 기타…’

2009년 받은 펜더 기타서 영감

대철·윤철·석철 세 아들이 반주

‘예민함’ 유지 비결은 소식과 명상

중앙일보

신중현은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원음 그대로 쏟아지는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라며 ’음이 추려진 디지털 은 본래 품고 있던 감정이 손실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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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부’라 하면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영향력이 큰 사람을 뜻한다. 한데 ‘록의 대부’ 신중현(81)은 마치 한 번도 정상을 밟은 적이 없는 사람마냥 겸손했다.

“2009년에 펜더사에서 특제 기타를 헌정 받았어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탔다는데 제가 에릭 클랩턴이나 제프 벡처럼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는 아니잖아요. 처음엔 너무 황홀해서 혼자 기타를 열심히 치기만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제대로 한번 들려드려야겠다 싶더라고요. 세상의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14년 만에 신보 ‘헌정 기타 기념 앨범’을 발표한 이유다.

발매 당일인 15일 경기 용인 자택에서 만난 그가 들려준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은퇴 공연 이후 세계적인 기타 제조사 펜더의 헌정을 계기로 다시 기타를 잡게 된 그는 이미 완성된 연주 실력을 뽐내는 대신 새로운 주법에 도전했다. 검지·약지·소지 등 세 손가락을 주로 사용하는 이른바 ‘33주법’이다. 그는 “벤딩이나 초킹을 통해 소리를 밀어 올려서내다 보니 멜로디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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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새 앨범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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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법 역시 확연히 바뀌었다. 온몸의 감각을 동원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옛날엔 노래도 무조건 크고 우렁차게 부르는 게 중요했죠. 마이크도 없고, 기계도 좋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제 미세한 숨소리까지 잡아낼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잖아요. 그럼 노래도, 연주도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봤어요. 배에서 나는 소리와 머리에서 나는 소리가 다른 것처럼 눈이나 다리에서 나오는 소리도 다르거든요.” 그는 예민함을 유지하는 비결로 소식과 명상을 꼽았다.

이 같은 변화는 그가 펜더 기타의 매력으로 꼽은 ‘솔직함’과도 맞아떨어졌다. “소리가 좋은 기타는 많죠. 하지만 이건 치는 그대로 소리가 나요. 조작이나 증폭이 전혀 없이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잘 치면 잘 치는 대로 난다고 할까요. 그래서 무서운 거예요. 이걸 쳐야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갈 수 있지만, 실력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니까 숨을 곳이 없죠.” 1958년 첫 음반 ‘히키신 기타 멜로디’를 발표한 이후 음악 인생으로 환갑을 맞은 그였지만 기타 얘기를 할 때면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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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은 소박하면서도 웅장했다. 그의 악기가 곳곳에 배치돼 있어 성전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는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기타 연주곡도 작업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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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전에는 세 아들도 총출동했다. 장남 신대철(52)과 차남 신윤철(50) 역시 각각 시나위와 서울전자음악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위해 베이스와 키보드를 맡았다. 드럼은 그루브 올 스타즈에서 활동 중인 막내 신석철(48)의 몫이었다. “내 밴드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들들을 불렀다”는 말과 달리 그는 자녀들과 첫 협업이 뿌듯한 눈치였다. 이들이 함께 무대에 선 적은 종종 있지만, 음반 작업을 함께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다들 바쁘니까 자주 보긴 힘들어요. 네 사람이 다 시간이 맞아야 하니까 녹음도 3년이나 걸렸죠. 제가 또 완벽주의자이다 보니 어디 하나 쉬운 게 없더라고요. 그렇지만 제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아이들이라 그런지 제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더라고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시대에 따라 음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 그가 주문한 것은 “진정성이 담긴 음악을 하라는 것”뿐이었다.

새 앨범에는 신곡 2곡을 포함해 총 8곡이 실려 있다. 1963년 국내 최초 록밴드 ‘애드훠(ADD4)’를 결성해 이듬해 발표한 ‘빗속의 여인’을 제외하면 장현의 ‘안개를 헤치고’(1972), 김정미의 ‘어디서 어디까지’(1973)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 대부분이다. 펄시스터즈를 비롯해 김추자·김완선 등 신중현 사단을 이끌며 숱한 히트곡을 남긴 그가 낯선 곡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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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이 33주법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손 마디 하나 하나에도 60년 넘게 기타를 연주해온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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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발표곡이긴 한데 신곡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때는 새 음반을 발표했다 하면 족족 금지곡이 되는 바람에 들은 사람이 얼마 없죠. 기타 위주로 다 다시 편곡하기도 했고요. 사실 신곡도 좋지만 그간 발표한 음악을 제대로 정리하는 작업도 중요한 것 같아요. 미8군 시절부터 60년 넘게 음악을 했으니 그동안 쌓아온 게 아까워서 동영상 강의도 틈틈이 찍어 놓고 있긴 한데 언제 발표할 수 있을지…. 죽기 전에 해 놓고 갈 일이 참 많네요. 시간이 참 빠듯해요.”

지난해 3월 부인 명정강씨를 먼저 떠나 보낸 그는 마음이 바쁜 듯했다. 명씨는 한국 최초의 여성 드러머로 블루 리본 등에서 활동했다. “음악 하는 사람하고 산다는 건 불행한 일”이라며 “일생을 힘들게 해서 미안한 생각뿐”이라는 그의 고백은 신곡 ‘사랑해 줘요’와 ‘그날들’의 가사와 묘하게 오버랩됐다. “난-언제까지나 우리의 사랑/ 잊을 수는 없을 거예요” “저기 저 밝은 빛 찾어서 다시 한번 가보리/ 내-그 길을 걸어가리”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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