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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창고같은 회의실, 명패도 없이 간이의자 놨다···日의 韓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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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한국, 대북 제재 제대로 해라"

日 경제산업성은 정치권 공세와는 다른 얘기

"부품공급망 차질 우려"에 "근거 없다" 반박

중앙일보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오른쪽부터)·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이 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일본 측 대표인 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과 마주 앉은 채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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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가시화 후 처음 개최된 12일 한ㆍ일 실무회의 후 일본 경제산업성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사실관계를 설명했으며, 그들(한국)의 인식도 깊어진 것으로 이해한다”며 “한국 측으로부터 (경제 보복 조치를) 철회하도록 요구하는 발언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의 자유무역 기조에) 위반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대항 조치가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한국을 ‘화이트 국가(대량살상무기로 전용 가능한 품목의 까다로운 수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혜택을 받는 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와 관련, 한국의 전략 물자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과는 무관하다고 한국 측에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가 한·일 양국간에 발생한 사안 때문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북한과 관련해서는 일절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며 “한국 측의 이의나 질문도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수출 규제 강화 이유로 “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관련한 부적절한 사안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이어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도 “한국 기업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에칭가스는 독가스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데 그 행선지가 북한일 수 있다”고 말해 한국 정부를 자극했다. 그러나 이날 경제산업성 당국자는 다른 맥락의 발언을 한 셈이다. 일본 정치권과 정부가 투트랙으로 이 사안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당국자는 이날 회의 형식에 대해 “협의가 아닌 (일본의 일방적) 설명회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추가로 협의할 예정은 없으며, 추가 질의는 e메일 등을 통해 설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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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열린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양국 대표단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 앞부터) 우리측 대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 (왼쪽 사진 앞부터)일본 측 대표인 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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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산업성의 브리핑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선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도체와 관련해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강화한 근거 등에 대해 집중 질의를 했고, 일본이 자국 입장을 설명하고 전달했다는 것이 된다. 일본은 앞서 지난 1일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리지스트ㆍ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와 스마트폰 액정 제조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한국에 수출하는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측은 이 조치의 근거에 대해 “한국 측에서 수출관리에 관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며 “시점은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적절한 사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또 “한국 반도체 제조에 차질이 생겨 세계 부품공급망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데 대해, 일본 측은 "근거가 없기 때문에 들어놓기만 했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김유근 사무처장이 브리핑을 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전문가) 패널이나 적절한 국제기구에 한ㆍ일 양국의 4대 수출 통제 체제 위반 사례 조사를 의뢰하자”고 밝힌 것에 대해 일본 측 당국자는 “아직 모르는 사안이라 노코멘트하겠다”고만 말했다.

이날 회의 분위기에 대해 경제산업성 당국자는 “정중히 설명했다”면서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오후 2시에 시작해 당초 예상보다 늦은 7시50분에 끝났다. 당초엔 2시간 안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약 세 배에 달하는 5시간50분 동안 회의가 진행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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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가 열린 12일 오후 한일 양국 취재진이 전찬수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 등 한국대표단이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에 들어서는 모습을 취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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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길어진 배경에 대해 일본 측 당국자는 “일본의 제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질문에 되도록 성의를 갖고 설명하고 대응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 조치의 내용에 대해 상세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냐”고 묻자 이 당국자는 “이해가 진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의 이해도가 높지 않았기에 설명이 오래 걸렸다는 주장이다.

이날 회의장은 일본 측의 홀대 분위기가 확연했다. 회의가 진행된 1031호 한 켠엔 의자가 쌓여있었고 바닥엔 검은색 먼지가 떨어져 있었다. 일본 측 회의 참석자들은 한국 측이 입장하는 데 일어서지 않았으며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경제산업성 당국자는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회의실은)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일반적 회의실”이라고 다했다. 인사를 나누지 않은 데 대해선 “시작하기 전에 명함 교환을 했다”고만 밝혔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서울=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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