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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88편] 시뮬레이션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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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지난 몇 글에서 위기를 상상해 보라는 조언을 했다. 우리에게 어떤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보지 않으면, 그 위기를 미리 알 방법이 없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위기를 낯설어 하는 것은, 사전에 그 위기를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상상해 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 여러 사람이 모여 상상의 시간을 가지면 될까? 어떤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이 적절한 위기 상상법일까? 답은 간단하다. 먼저 위기의 유형을 특정해 시뮬레이션 해 보는 것이다. 위기관리에 대한 상상이다.

운동 선수들은 실제 몸을 쓰는 훈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자신이 몸을 움직인다 생각하고 다양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 따라 근육과 신경의 움직임을 떠올려 본다. 이런 상상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실제 상황이 되었을 때 좀더 몸이 익숙하게 움직여 준다고 한다.

위기 상상 훈련도 그와 마찬가지다. 다만, 기업의 위기라는 것이 개인 몸 하나를 움직여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기관리 조직이 함께 모여 실제 같은 위기를 경험하며, 각 상황에서 의사결정과 대응 방식을 연습해 보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진짜 위기를 경험해 보는 것이 위기관리 훈련에 있어 가장 효과적(?) 방식이지만, 현실적이거나 권장할 만한 훈련 방식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특정 위기 유형을 설정해 위기 발생에서 종결에 이르기까지 많고 다양한 과정을 경험해 보는 시뮬레이션을 한다.

상황 변화 과정과 더불어 시뮬레이션에서는 각종 이해관계자 변수를 시나리오에 더해 더욱 현실화한다. 상황 하나를 놓고 고민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움직이고 변화하는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대응 까지를 연결시켜 고민하게 한다.

한 외국 영화에서 주인공인 유부녀 셀러브리티의 불륜이 한 파파라치 언론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다. 이후 여러 가십 기사가 나오자, 그녀는 사과 기자회견을 한다. 머리 숙여 죄송하다 이야기를 하고 나니 한 기자가 질문한다. “왜 이런 문제를 일으켰습니까?” 화가 난 그 주인공은 이렇게 답변한다. “문제는 기자분들이 만든 거 아닙니까? 제 남편도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데 말이죠.”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에서도 그렇다. 위의 예와 같이 ‘부정 보도’에 대한 시뮬레이션 대응은 정지된 그 ‘문제’ 자체에 대한 대응에만 머무를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 위기관리 주체는 ‘부정 보도’가 발생하면 그 보도 자체만이 아닌, 그로 인해 발생되는 다양한 부가 ‘문제’들과 이해관계자 반응이 더 복잡하고 중대한 관리 대상이 된다. 따라서 시뮬레이션에서는 그런 광범위한 상황과 이해관계자 변수들을 실제와 유사한 상황에서 관리 대응하는 방식 까지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뮬레이션을 다양한 위기유형에 따라 반복하면, 해당 기업의 위기관리 조직은 실제로 위기를 경험해 본 수준에 육박하는 역량을 지니게 된다.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변화를 실제 유사 사례들과 비교 분석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어떤 전략으로 대응했는지를 다양하게 돌아보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의 또 다른 혜택은 자사 위기관리 시스템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기회가 생긴다는 데 있다. 시스템의 약점이나 빈 공간을 그대로 찾아 내 개선과 강화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자사 위기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실제 위기 시 겨우 발견하는 데 비해,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통한 기업은 평소에 시스템 문제를 집어 내, 개선 강화하게 된다. 따라서 위기 발생 이전은 물론 위기 발생 이후에도 더욱 더 안정적인 위기관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된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위기관리 조직 스스로 강력한 팀워크와 개인적 역량을 키우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평소 마주할 수 없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감정과 입장을 그대로 접하는 기회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대응 그룹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위기를 상상해 보라는 말이 기업 VIP에게는 위기관리를 시작하는 동기부여의 한 방법이 될 수는 있다. 위기관리 조직 구성원 각자에게도 마찬가지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상상이 충분하다면, 그 다음은 위기관리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단계가 될 것이다.

위기관리에 대한 상상은 곧 시뮬레이션으로 완결된다. 개인적 상상을 넘는 조직적 상상. 위기에 대한 상상을 넘어 위기관리에 대한 상상. 머릿속 상상을 넘어 대응 전반의 상상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 정용민은 누구?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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