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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당신이 알아야 할 직장 괴롭힘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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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러스트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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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ㄱ씨(33)는 얼마 전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직했다. ㄱ씨가 복귀 의사를 알렸을 때 회사가 탐탁지 않아 하는 걸 느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자신이 예민한 거라고 생각했다. 복귀 후에 회사는 한동안 ㄱ씨에게 아무런 일을 주지 않았다. 당장 정해진 업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ㄱ씨는 컴퓨터로 인터넷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 ㄱ씨는 회사로부터 업무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ㄱ씨가 업무를 달라고 요청하자 회사는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컴퓨터, 휴대전화, 책 읽기 등을 할 수 없게 된 ㄱ씨는 결국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ㄱ씨는 회사가 자신을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회사 인사팀의 태도는 아주 ‘젠틀’했다.

업무에서 배제되자 자연스럽게 ㄱ씨는 회사에서 겉돌게 됐다. 누구도 대놓고 ㄱ씨를 따돌리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오가는 대화는 업무 관련 내용이 많아 ㄱ씨는 동료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업무가 많은 날이면 사무실 곳곳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ㄱ씨는 그런 한숨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다. ㄱ씨는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2 ㄴ씨(27)는 상사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지경이다. 영업직 특성상 ㄴ씨는 외근이 잦다. 상사는 ㄴ씨에게 30분~1시간마다 “어디냐?” “밥은 먹었냐”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고 묻는다. ㄴ씨는 감시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상사가 업무시간에 업무 관련 내용을 묻는 것에 대해 항의할 수는 없었다.

ㄴ씨가 이를 문제로 인지하게 된 건 동료들에게 털어놓고 나서다. 해당 상사는 ㄴ씨를 제외한 다른 누구에게도 수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사는 출근 전, 퇴근 후, 심지어 휴가 때도 ㄴ씨에게 안부를 묻거나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성희롱이 아니냐는 질문에 ㄴ씨는 “성적인 발언은 전혀 하지 않는다.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ㄴ씨는 상사의 행동이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폭력, 폭언, 성희롱 등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일부 동료들은 “상사가 너를 아껴서 그렇다”고 말했다. ㄴ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상사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스트레스로 인한 피해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업무상 ‘적정범위’ 여부가 핵심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당사자조차 ‘긴가민가’했던 이런 사례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괴롭힘’으로 판단돼 징계 대상이 된다. 그동안 폭력, 부당노동행위, 성희롱 등은 형법, 노동조합법, 남녀고용평등법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이 같은 은밀한 괴롭힘에는 대응할 수 있는 법이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는 근로기준법 제76조 2에 포괄적으로 명시돼 있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 괴롭힘이 되려면 이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가장 첨예한 것은 ‘업무상 적정범위’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이 적정범위는 업무상 필요성과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한다. 즉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으려면 업무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그 행동이 사회통념상 문제가 있어야 한다. 막말, 험담, 왕따 등이 후자에 해당된다.

따라서 ㄱ씨의 경우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해도 한 달 동안 업무를 주지 않은 채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사회통념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적정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해석하는 게 가능하다. ㄴ씨 경우 역시 상사가 퇴근 이후나 휴가 중에도 안부를 묻거나 밥을 먹자고 제안한 부분은 적정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외에도 행위의 내용, 정도, 지속성 등이 판단 기준이 된다. ㄴ씨의 경우 업무와 관계없는 상사의 관심이 1년 이상 지속됐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 매뉴얼에 따르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 흡연, 회식에 참여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도 괴롭힘에 해당된다. 회식은 더 이상 업무의 연장선이 아니다.

아울러 매뉴얼은 ▲업무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적으로 부여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주지 않음 ▲업무와 관련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 ▲타인이나 온라인 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 등도 괴롭힘에 해당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난해 11월 21일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가운데)을 비롯한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입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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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당사자 아니라도 신고할 수 있다



피해자는 어떻게 구제를 받을 수 있을까? 먼저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면 회사 인사팀이나 고충처리위원회 등에 괴롭힘 사실을 신고할 수 있다. 신고주체는 꼭 피해자가 아니어도 된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회사에 알릴 수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제76조 3에 따라 괴롭힘이 사실로 드러나면 회사는 피해자가 요청하는 근무지 변경, 유급휴가 등을 제공해야 한다. 가해자에게는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게 되면 근로기준법 개정안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또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규정을 취업규칙에 반영해야 한다. 10인 이상 사업장은 기존 취업규칙에 ▲금지되는 괴롭힘 행위 ▲예방교육 ▲괴롭힘 발생 시 조치 ▲징계조항 ▲재발방지 대책 등을 추가하거나 별도로 관련 규정을 만들어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된다.

별것 아닌 일로 여겨졌던 은밀한 괴롭힘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름 붙이고 법으로 이를 금지한 것은 큰 진전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사상 처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을 법률에 도입했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 인정범위를 넓혀 직장갑질을 줄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개정안이 가진 한계들



하지만 한계도 있다. 먼저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다. 또 괴롭힘을 노동청과 같은 정부기관에 알리는 게 아니라 소속 회사에 신고하고 회사가 자체적으로 조사와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가해자가 회사 대표일 경우 제대로 된 조사나 조치가 이뤄지기 어렵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나 양진호 전 위디스크 회장의 ‘갑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피해자가 입증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직장에서의 괴롭힘을 다룬 책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2016)은 “괴롭힘은 초기에는 무슨 상황인지조차 파악이 안 돼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고, 괴롭힘이 한창 진행돼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자료만이 피해자가 가진 자원 전부일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ㄱ씨의 사례처럼 괴롭힘이 진행될수록 함께 있던 동료와 지지자도 사라지기 때문에 피해자는 혼자 버티거나 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 달리 프랑스는 사용자에게 입증책임을 지도록 한다. 노동자가 괴롭힘을 주장하면 사용자는 노동자의 주장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입증하지 못했을 경우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프랑스 형법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혹은 사용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만 유로(약 39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2차 가해를 입기 쉽다. 이번 개정안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것이 남녀고용평등법의 직장 내 성희롱 예방법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2017년 분석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3명 중 2명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 불이익 조치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지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장수국 노무사는 “성희롱 예방법도 처음에는 강제규정이나 처벌규정이 미비한 부분이 있었는데 성희롱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규제의 필요성이 공감을 얻으면서 점점 처벌규정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직장 내 괴롭힘도 인식이 확산되면 미흡한 부분이 보완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괴롭힘, 이럴 땐 어떻게 하나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블라인드’ 앱에는 각종 질문이 올라왔다. 중복되는 질문 몇 개를 추려 문답으로 구성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회사 외에 상담할 곳은 없나요?

“직장갑질119와 같은 시민단체나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근로복지넷에서 ‘익명으로’ 온라인, 전화, 화상, 오프라인 상담이 가능합니다. 근로복지넷에서 전화, 화상, 오프라인 상담은 1회에 50분, 연간 최대 7회까지 가능합니다.”

-상사에게 낮은 등급을 받았습니다. 이 경우도 괴롭힘에 해당하나요?

“먼저 인사평가는 업무상 적정범위에 포함되기 때문에 괴롭힘에 해당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으로 낮은 등급을 줬다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이 경우 회사에 근거자료를 요청해야 합니다.”

-양진호 사건처럼 사용자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나요?

“근로기준법 8조는 폭행 금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상 폭행죄 규정이 있음에도 근로기준법이 별도로 폭행 금지를 규정한 것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정당화되거나 폭행죄 적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합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외에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나요?

“노동조합법은 노동3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당노동행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노조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다면 괴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하는 것 외에도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불이익 행위가 있은 뒤 3개월 이내에 신청을 해야 합니다.”

-괴롭힘을 어떻게 입증해야 하나요?

“전문가들은 매일 ‘기록’할 것을 권합니다. 기록하는 정보는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날짜뿐 아니라 시간, 날씨, 당시에 가해자가 입었던 옷까지 기록하면 가장 좋습니다. 가해자 측에서 피해자의 주장일 뿐이라고 공격할 때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정보가 담겨 있다면 기록의 신빙성이 높아집니다.”

-괴롭히는 상사가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데 나중에 빌미를 잡힐까 무서워요.

“시말서를 쓰라는 지시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시말서가 쌓이면 징계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본인의 실수가 있는 경우라면 무조건 방어적으로 쓰기보다 전후 사정을 잘 설명하는 것이 좋고, 부당하게 시말서를 써야 하는 경우라면 회사의 요구와 다르더라도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적어야 합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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