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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사과로 끝낼래? 사표 쓸래?...직장갑질에 두 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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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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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한 공장에 취직한 A씨. 불쾌한 일의 연속이었다. 상사라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옷에다 손을 넣어 어깨를 주무르거나 턱수염을 볼에다 비벼댔다. 질색하며 펄쩍 뛰면 “아줌마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며 능글맞게 웃을 뿐이었다.

참다 못해 회사에 신고했더니 더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 관리자가 나서더니 “상사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거면 당신도 회사를 나가라”고 말했다. A씨가 경찰에 고소장을 내자 그제서야 회사는 성추행한 상사와 사표를 종용한 관리자를 회사에서 내보냈다.

산 넘어 산이었다. 회사는 부사장까지 나서서 “보복 없이 회사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A씨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새로 온 중간 관리자는 A씨는 물론, A씨와 친한 동료들까지 지속적으로 교묘하게 모욕했다. 그러더니 A씨에게 권고사직을 종용했다.

A씨 사례는 1일 노동ㆍ인권단체 직장갑질119이 올 상반기 접수한 ‘신고자 보복 갑질’ 사례 가운데 뽑은 10건 중 하나다. ‘직장 갑질’을 근절하려면 갑질을 신고한 사람에 대한 보복까지 막아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해고 등으로 보복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직장갑질을 뿌리뽑기 위해 오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전면 시행에 들어간다지만,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오히려 관련 제보와 신고는 더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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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직장갑질119’가 뽑은 올 상반기 대표적 ‘신고자 보복갑질’ 사례.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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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처럼 성희롱, 성추행을 문제 삼은 경우는 물론, 내부고발자 사례도 있다. B씨는 부산의 한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를 고발했다. B씨는 계약종료를 핑계로 내쫓겼지만, 법적 절차를 밟아 복직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전 부서의 전 직원들이 원망하는 눈빛과 말들을 쏟아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현장근무가 어렵다는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B씨를 다시 현장근무로 발령내기도 했다. 면담과정에서 간부들은 고성과 욕설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B씨는 일단 무급 병가를 냈다.

정당한 권리 방해도 있었다. C씨는 연장 근무가 계속 이어지자 관리자에게 대체휴무를 어떻게 쓸 수 있을 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관리자는 “앞으로 근무시간 외 근무를 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니 업무에서 C씨를 배제시켰다. 이윽고 일거리를 사실상 끊어버렸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괴롭힘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사용자에 대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유ㆍ무형으로 가해지는 여러 압박과 보복 행위를,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처지에 놓인 신고자가 일일이 입증하긴 어렵다. 이 때문에 익명전수조사를 통한 신고자 비밀 보장, 근로감독 이후 사후관리의 중요성 등이 강조된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총괄스태프는 “이미 처벌 조항이 있었던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도 실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직장갑질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엄중한 법 집행 못지 않게 근로감독 전반이 촘촘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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