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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가교' 그 정신 기리며… 이수현으로 하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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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故이수현 18주기 행사

추모 영화 '가케하시' 상영… 한일 관객들 150개 좌석 꽉 채워

지난 2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 대사관 공보문화원 3층 뉴센추리홀. 150개 좌석을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꽉 채웠다.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한국인 청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2001년 일본 도쿄 유학 중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義人) 이수현씨를 추모하는 영화 '가케하시(懸橋)'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것이다. 상영 전 손수건을 손에 쥐고 있던 한 일본인은 이씨 부모님이 사고 현장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흐느껴 울었다. 가케하시는 '떨어진 양쪽을 잇는 가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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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고 이수현씨의 어머니 신윤찬(오른쪽)씨와 이씨 추모 영화 '가케하시' 총괄 제작자 나카무라 사토미씨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가운데에 이씨의 초상화가 보인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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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는 지난 14일부터 주한 일본 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고(故) 이수현씨를 기리는 18주기 추모 행사 '한·일의 빛과 꿈, 의인 이수현과의 뜨거운 포옹'을 열고 있다. 행사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일수록 사람들 기억 속에서 이수현을 더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이수현 정신'이 한·일 관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를 관람한 조승연(23·대학생)씨는 "의인 이수현처럼 나도 한·일 관계 개선에 기여하는 하나의 가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 이수현씨는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한·일의 무역 관계에 관심을 가져 2000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생전 일본어 학교에 제출한 유학 동기서에 '두 나라의 교역과 문화 교류에 있어 확실한 제1인자가 되고자 한다'고 썼다. 그러나 2001년 1월 26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도쿄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졌다.

이날 같은 건물 2층에선 이수현씨 사진전도 열리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고 활짝 웃으며 아버지와 백사장에서 닭싸움을 하고, 기타를 들고 밴드 공연 무대에 선 이수현씨 사진이 전시됐다. 27일까지 열리는 열리는 이 행사에는 25일 하루에만 131명이 사진전을 관람했다.

사진전 한쪽 코너에는 사고 후 한·일 양국 시민의 추모 편지 200여 장과 훈장이 놓였다. 추모의 글을 쓰는 공간엔 일본인이 빼뚤빼뚤한 한글로 쓴 '이수현씨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이수현 정신으로 한·일 관계 개선 기원' 등의 글이 적혔다. 오후 6시에 전시를 관람한 일본의 한 잡지사 직원은 이씨의 사진 50여 장을 하나하나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 갔다. 사진전을 찾은 이노 히로코씨는 "일본에서 행사 관련 뉴스를 접해 오게 됐다"며 "이씨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라 생각해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행사 관계자는 "일부러 일본에서 온 사람이 꽤 있었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가 되고자 했던 이씨의 못다 이룬 꿈을 이씨 부모가 대신 이뤘다. 이씨 아버지 이성대씨와 어머니 신윤찬(70)씨는 사고 이듬해인 2002년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일본 각지에서 보내온 위로금을 일본으로 유학 오는 아시아 학생들에게 지원했다. 지난해까지 897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이성대씨는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신윤찬씨는 "수현이와 남편의 뜻을 이어가는 데 내 남은 삶을 다 쓰겠다"고 했다.

영화 '가케하시'는 이런 이씨 부모의 모습도 담았다. 영화 총괄제작자 나카무라 사토미(55)씨는 "수현씨뿐 아니라 그 부모 역시 '한·일의 가교'였다"고 말했다. 이날 이씨의 어머니 신씨는 양국에서 온 추모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수현이의 뜻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오랜 추모 열기는 '한·일 우호'라는 수현이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인 것 같아 희망이 생깁니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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