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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조선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보물됐다, 유물10점 문화재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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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혼개통헌의(앞면 모체판과 성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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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18세기 천체 관측기기 '혼개통헌의'를 비롯해 고려~조선 회화, 불교문화재, 전적, 철기 거푸집, 청동거울, 통일신라 시대 도기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龜尾 大芚寺 三藏菩薩圖)' '김천 직지사 괘불도(金泉 直指寺 掛佛圖)' '도은선생시집 권1~2'(陶隱先生詩集 卷一~二)'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陶器 鉛釉印花文 壺 一括)'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李寅文 筆 江山無盡圖)'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新編類聚大東詩林 卷九~十一, 三十一~三十九)'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高敞 禪雲寺 懺堂庵 石造地藏菩薩坐像)'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完州 葛洞 出土 銅劍銅戈 鎔范 一括)'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完州 葛洞 出土 精文鏡 一括)' 등 유물 10점을 각각 보물 제2025, 2026, 2027, 2028, 2029, 2030, 2031, 2032, 2033, 2034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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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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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740년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제석도(帝釋圖), 현왕도(現王圖),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와 함께 조성되어 대둔사에 봉안됐던 그림이다. 이 중 삼장보살도만 전해오고 있다.

세로 238㎝, 가로 279㎝의 대형 화폭에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지보살(持地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의 모임을 묘사했다. 월륜(月輪), 치흠(致欽), 우평(雨平) 등 18세기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높은 수미단 위에 앉은 보살들과 인물마다 질서 정연하고 짜임새 있는 배치로 보아 화승들의 수준 높은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 수미단은 사찰 법당에 설치하는 단상으로 나무, 금석, 돌로 수미산 형태 단을 만들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한 대좌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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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오른손에 약병 들고 있는 천장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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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장보살도의 도상은 1661년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이란 경전을 근거로 제작됐다. 천장보살은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인 약사여래처럼 약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약병을 든 천장보살의 모습은 같은 시기 다른 지역 불화에서는 좀처럼 확인되지 않고 경상북도에서만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18세기 삼장보살도의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있다.

16세기 이전에 제작된 삼장보살도 대부분은 일본 등 해외에 전해지고 있다. 17~18세기 초 제작된 '안동 석탑사 삼장보살도'(1699)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1707)조차 도난당해 소재가 불분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전반 연대를 가진 삼장보살도로서 중요하다.

유려하면서도 세련된 필치와 안정된 구도, 적색과 녹색이 중심이 된 색감에서 조선 후기 불화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1년 후에 조성된 '상주 남장사 삼장보살도'(1741)와 함께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삼장보살도를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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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괘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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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1803년 제작된 괘불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시기가 가장 빠르고 규모도 가장 크다.

머리에 보관을 쓴 보살형 본존이 양손으로 연꽃을 받치고 정면을 향해 서 있는 독존 형식의 괘불도다. 괘불 하단에 쓰인 화기를 통해 직지사를 중심으로 경북에서 활동한 제한(濟閑), 위전(偉傳), 탄잠(綻岑), 부첨(富添), 신화(信和) 등 화승 13명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단독 보살형 본존을 중심으로 한 화폭에는 10위의 시방제불(十方諸佛)과 5위의 보살상을 배치했다. 앞 시기 괘불에서 보인 중량감 넘치는 형태에서 가늘고 날씬한 형상으로 변모한 점과 굵고 대담한 선묘(線描)가 시대적 전환기에 제작된 불화 특징을 보여준다.

약간 어두운 적색과 녹색의 대비로 18세기보다는 시각적으로 엄숙한 느낌을 준다. 일부 권속에만 쓰이던 입체적 음영법이 본존까지 확대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 표현기법도 확인된다.

높이 12m 넘는 대형 불화임에도 불구하고 도상 배치, 상·하축 조형성, 입체감 표현 등 여러 면에서 19세기 불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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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027호 도은선생시집 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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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선생시집 권1~2'는 고려 말 문인 도은(陶隱) 이숭인(1347~1392)의 문집 5권 가운데 권1~2에 해당한다. 금속활자로 간행했다.

1406년 태종은 이숭인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린 후 그의 문집 간행을 명했다. 변계량(1369∼1430)이 편집하고 권근(1352∼1409)이 서문을 지어 간행한 것이 '도은선생시집'이다.

권근이 서문을 쓴 연도가 1406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 개국 이래 최초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주조된 1403년에서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계미자본 인쇄 시 주로 주석 글자로 사용된 계미자 중자(中字)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책 맨 앞은 없어져 권근이 쓴 서문의 말미 4행만 남았다. 본문도 주석 없이 원문만 있는 권1~2만 수록되어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

현존본이 귀중한 사례라는 점, 조선 개국 이래 가장 먼저 인쇄된 계미자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고려와 조선 전환기 금속활자 인쇄술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연구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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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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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은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대호(大壺)와 소호(小壺)로 구성됐다. 대호와 소호는 제작 당시 외호와 내호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는지는 불분명하나 유사한 형태, 문양, 제작기법을 보여줘 같은 공방과 장인이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입자가 미세한 점토로 구워냈고 유약은 산화납과 산화동을 섞어 녹색을 띠도록 만든 녹유계(綠釉系) 연유다. 구연부와 몸체 전반에 걸쳐 종류가 다른 인화문을 찍었으며 문양대를 분할해서 시각적 다양함을 추구했다.

뼈항아리 계열의 통일신라 연유도기 항아리 중 가장 크고 문양소재가 화려한 통일신라 연유도기의 제작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구연부와 바닥굽 등 일부가 파손돼 후대에 보수를 거쳤으나 동시기 도기와 비교할 때 조형·기술적 측면에서 독보적이다.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 측면에서도 8세기 통일신라 도기를 대표할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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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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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1745~1821)이 그린 것으로 총 길이 8.5m에 달한다. 긴 두루마리 형식의 이 그림은 이인문 그림 중 처음 보물 지정이 예고된 작품이다. 조선 말기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이 그림을 소장했었다.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전통적 그림 주제인 끝없이 이어지는 대자연 강산무진(江山無盡)을 형상화했다. 웅장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렸다. 광활하고 넓은 구도에서 시작하다가 우뚝 솟아오른 절벽이 나타난 전반부와 험준한 산세가 중첩되어 광활하게 그려진 중반부, 다시 잔잔한 풍경으로 연결되는 3단계로 구성됐다. 이 구성은 보물 제1986호 심사정(1707~1769)의 '촉잔도(1768)와 비슷하다.

'강산무진도'는 산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촉잔도'보다 풍속적 요소를 현실감 있게 결합시켰다. 표현에 있어서도 붉은색과 연두색을 많이 사용해 화사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점, 산의 생김새를 또렷하게 묘사해 박진감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이인문의 개성이 잘 반영됐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한국회화사에서 보기 드문 장권(長卷)의 산수화로 전문 직업화가로서 그의 높은 기량이 발휘된 기념비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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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편유취대동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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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는 총 70권 중 권9~11 및 권31~30에 해당한다. 1542년에 쓰인 금속활자인 병자자(丙子字)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판본은 16세기 우리나라 시문집 간행의 과정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서책이다.

'신편유취대동시림'은 조선 중종 연간의 문신인 유희령(1480~1552)이 고대로부터 당시까지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모은 70권의 시선집이다. 기존에 간행된 시문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기적으로는 고대로부터 당대까지 왕실, 여성, 승려, 귀화인 등의 작품을 망라했다.

현재까지 동일 판본이 확인되지 않은 유일본이자 1516년 중국 명나라 때 간행된 '자치통감'을 바탕으로 '주자도감'에서 새로 주조한 병자자로 인쇄한 서책이라는 점, 조선 전기 금속활자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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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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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고려 말~조선 초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온화한 표정과 불룩한 입술, 양쪽에서 드리워져서 여의두 형태로 마무리진 띠 장식, 둥근 보주를 든 모습, 치마를 묶은 띠 매듭은 고려 말기 조각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띠로 묶어 주름잡은 섬세한 두건의 표현이 조형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보주를 든 두건 지장의 정확한 도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여말 선초의 지장 신앙과 지장도상 연구에 귀중한 사례다. 이 시기 금동과 목조 지장보살상은 몇 점이 전하고 있으나, 석조 지장보살 중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사례는 참당암 지장보살좌상이 유일하다.

대좌의 경우 보살상과 함께 조성됐는지 불명확하나, 상·중·하대를 완전하게 갖추고 가늘고 긴 형태, 여의두문(如意頭文)이 새겨진 안상(眼象) 등에서 고려 시대 특징이 뚜렷해 보물로 지정해 보존·관리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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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개통헌의(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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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개통헌의'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한 원판형 관측기구에 통합해 표현한 천문 관측 도구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제작 사례다.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의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를 실학자 유금(1741~1788)이 조선식으로 해석해 1787년 만든 과학 기구로서, 이 유물은 1930년대 일본인 도기야(磨谷)가 대구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2007년 고 전상운 교수의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된 문화재다.

‘혼개통헌의’는 별 위치와 시간을 확인한 원반형의 모체판과 별의 관측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으로 구성됐다, 모체판 앞뒷면에 걸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선생(실명미상)을 위해 만들다(乾隆 丁未 爲約菴 尹先生製)'라는 명문과 더불어 '유씨금(柳氏琴)'이란 인장이 새겨져 있어 유금이 약암(約菴)이라는 호를 쓴 윤 선생을 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밤 시간에 특정한 별을 관찰하는 '규형(窺衡)', 별의 위치를 확인하는 '정시척(定時尺)'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모체판과 성좌판만 남았다.

모체판은 앞면 중심에 하늘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하게 만들어졌다. 외곽을 24등분해 맨 위에 시계방향으로 시각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 적도, 북회귀선의 동심원, 위쪽에 지평좌표원을 새겼다.

성좌판은 하늘의 북극과 황도 상 춘분점과 동지점을 연결하는 T자형으로, 축과 황도를 나타내는 황도원을 한판으로 제작했다. 특정별과 대조할 수 있도록 돌출시킨 지성침은 11개다. 뒷면 윗부분에는 '북극출지 38도(北極出地三十八度)'란 위도를 새겼으며 이는 곧 서울의 위도 36.5도에 해당한다.

모체판과 성좌판에는 북극성, 직녀자리, 견우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뱀주인자리, 안드로메다, 오리온, 페가수스 등 계절별 주요 별자리가 표시됐다. 알파드, 프로시온 등 우리나라 하늘에서 주로 관측되는 별자리 사이에 있는 작은 별들의 위치도 표시했다. 유금의 '혼개통헌의'가 중국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가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조선식 천문시계를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혼개통헌의'는 서양 관측기기인 아스트롤라베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일무이한 천문 도구이자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적 성과를 보여주는 실례다. 제작 원리와 정밀도에 있어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알려주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과학 문화재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은 2003년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 2점이다. 1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1점은 동검과 동과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초기 철기 시대 호남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이다. 고분의 편년과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의 형식 등으로 볼 때, 기원전 2세기께 실제로 사용된 후 무덤에 매장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이다.

이 석제 거푸집은 실제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같이 나온 유물들로 보아 출토 정황이 명확해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서 귀중한 문화재다. 거푸집 상태,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가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건이지만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하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출토 지점과 출토 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자료의 진실성과 중요성이 다른 거푸집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보존 상태가 양호해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데도 가치가 있다.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은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 2세기에 사용된 청동제 거울 2점이다. 정식 발굴조사로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다. 2007년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 있는 갈동 5호와 7호 토광묘에서 1점씩 출토됐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정문경은 약 60점이다. 이 중 '전(傳) 논산 정문경'은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순 대곡리에서 나온 정문경은 함께 출토된 팔주령(八珠鈴), 쌍주령(雙珠鈴) 함께 국보 143호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로 지정됐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묘에서 출토된 정문경 2점은 국보 정문경이나 화순 대곡리에서 나온 정문경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됐다. 정교한 문양이 특징이다. 따라서 초기 철기 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정문경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이처럼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2점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 시대 청동기 주조기술 이해하는데 가치가 있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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