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원은희 |
이 시는 시인이 한국전쟁 당시 종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연작시「초토의 시」 15편 중 8번째 작품이다.
시인은 전쟁 당시 서로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적군의 묘지에 서 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5번지에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바라보고 있자니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시인의 가슴을 억누른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의 구름은 마음대로 북으로 흘러가는데 내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고향 땅은 고작 30리인데도 가로막혀 있다.
북쪽이 고향인 시인은 삼십 리 저편에 가로막혀 있는 고향 땅을 바라보면서 민족 분단의 고통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이북이 고향인 나의 부모님도 설이나 추석엔 임진각에서 부모님이 계시던 북쪽 땅을 바라보고 눈물짓곤 하셨다.
마음대로 흘러가는 저 구름처럼, 거칠 것 없이 훨훨 날아가는 새처럼 우린 남쪽 땅도 북쪽 땅도 언제 자유롭게 밟아볼 수 있을까?
박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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