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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미술시장, 감정경쟁 아닌 감정싸움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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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감평원 해산’ 이후 미술품 감정업무 공백 이어져

새로운 감정연구센터·화랑협회 자체기구 등 잇따라 설립

폐기 앞둔 ‘9000여점 감정 자료’ 놓고선 법정다툼 가능성

지난 18일과 21일 새로운 미술품 감정기구의 출발을 알리는 기자간담회가 연달아 열렸다. 기존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이 지난해 9월 문을 닫기로 결정하고 청산절차를 밟으면서 미술품 감정시장에 빈자리가 생겼다.

감평원의 일부 주주들이 새로 설립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감정연구센터)는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공동대표로 앞세워 지난 3월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지난 12년간 감평원에 감정업무를 맡겨왔던 화랑협회도 지난 21일 간담회에서 “자체적으로 감정기구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 감정은 어떻게 하나

한국에서 미술품 감정은 진위판정이 우선이다. 작품의 ‘출생단계’와 유통과정 등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다면 진위판정이 필요 없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이럴 때 가장 손쉬운 ‘보증’ 방법이 감정기구에 감정을 의뢰하는 것이다. 감정료는 20만~60만원 정도 필요하다.

작품 감정은 10명 내외의 전문가들이 모여 진행한다. 감정기구는 감정위원 풀을 만들어 놓고 작품의 종류와 작가 등에 따라 소집한다. 미술사 전공자, 전시 기획자, 평론가, 대학교수, 화랑 운영자 등이 감정위원 대다수를 차지한다.

감정위원들은 전문분야에 따라 ‘안목 감정’을 실시하고 의견을 낸다. 각자의 경험에 기초하다 보니 위원들의 감정결과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대개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같은 의견을 내면 진위판정을 내린다. 상반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면 ‘감정 불능’으로 결론 낸다.

■ 감정기구의 통합과 분열

한국화랑협회가 1982년 만든 감정위원회가 한국 감정기구의 시초다. 2002년에는 일부 화랑 대표와 학계 전문가들이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를 만들어 경쟁체제로 들어갔다. 이후 5년간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와 감정연구소는 별도로 감정을 진행했다. 2007년 화랑협회가 감정연구소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감정기구는 사실상 일원화됐다. 감정연구소는 2011년 이름을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으로 변경했고 화랑협회와 업무협약을 갱신하면서 협조관계를 이어갔다.

지난해 9월 주식회사인 감평원의 주주들이 해산을 결정했다. 좀 더 공익적 성격을 띤 사단법인으로 재구성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주주 간 이견이 생기면서 해산만 됐을 뿐 사단법인으로 새 출발을 하지 못했다. 감평원의 대주주인 송향선 가람화랑 대표와 임명석 우림화랑 대표는 감평원과 마찬가지로 주식회사인 감정연구센터를 지난 3월 설립했다. 감평원 인력의 상당수가 감정연구센터로 옮겨갔다.

감평원과 감정연구센터는 서류상으로는 연관이 없다. 이 때문에 감평원이 그간 발행한 9000여점의 감정서 등 감정 자료를 누가 이어받을지도 관심이다. 일단 감평원은 해당 자료를 모두 폐기한다는 계획이다. 화랑협회가 그간의 업무협약을 내세워 이관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감정자료 폐기를 놓고 법정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감정연구센터는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정준모 공동대표)라며 발을 뺐다. 화랑협회 최웅철 회장은 “(화랑협회에) 감평원 해산 책임도 있는 만큼 ‘감정 데이터’가 확보되면 의뢰인들의 감정서를 확인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 8월부터 다시 경쟁 시대

화랑협회가 본격적으로 감정업무를 시작하는 8월부터 미술품 감정시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업무를 시작한 감정연구센터는 ‘차세대 감정위원’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의 60~70대 감정위원에 새 얼굴들을 합류시켜 이른바 ‘미술품 감정의 3세대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화랑협회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감정서 등 디지털 서비스를 앞세우고 있다. 화랑협회 윤용철 부회장은 “우리는 주식회사처럼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할 생각이 없다”며 감정료를 인하할 의향도 내비쳤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두 기구의 경쟁이 혼선만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하고 있다. 미술품을 감정할 수 있는 인력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되레 감정의 질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사 연구가 황정수씨는 “외국의 경우 해당 작가의 재단이나 화랑에서 진품임을 보증하고,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배상을 한다”며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미술계 사람들이 공신력도 없는 감정기구를 만들어 감정서를 남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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