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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아베 "G20 정상회담 일정 꽉 찼다" 정부 "우리도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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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나흘 앞두고도 신경전 계속… 정상회담 사실상 무산된 듯

조선일보

한·일 정부가 이달 28~29일 열리는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계기로 추진해왔던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2일 요미우리 TV 인터뷰에서 "G20 회의 주최국 의장이므로 (양자회담) 일정이 꽉 차 있다"며 "시간 제한상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 외 다른 나라와의 정상회담 일정이 다 잡혀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아베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에 부정적 전망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한·일 정상회담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남은 현실적 대안은 G20 회의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잠깐 만나 악수하는 수준의 약식 회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양자회담 일정이 거의 다 찼다"며 "회담을 하고 싶다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전직 외교관은 "일본이 우리 신경을 긁은 건 사실이지만, 그 대응이 아쉽다"며 "제3자가 보기엔 유치한 기 싸움"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번 G20 회의 기간 중 중국·러시아·캐나다·인도네시아 등 4개국과의 정상회담 일정을 최근 공개했다. 청와대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계속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지만, 아베 총리가 이번에 공개적으로 '일정'까지 거론한 이상, 한·일 정상회담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했다. 이어 "먼저 한국 측이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위안부 합의에서도) 일본은 성실하게 국제법에 따랐다. 이번은 한국이 확실하게 그런 대응을 할 차례"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로 압류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이 매각될 경우, 한국 정부에 대한 배상 청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 간부는 지난 21일 "일본 기업이 부당한 불이익을 받게 되면 국가가 청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에 의해서 모두 해결됐는데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으므로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다는 논리다. 일본이 고려 중인 이 조치는 '대항 조치'가 아니라 국제법적으로 인정받는 조치라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한국에서 일본 기업 자산 매각이 이뤄지고 일본이 실제로 배상 청구에 나설 경우, 한·일 간 정치적 관계는 '사실상 단교(斷交)' 상황에 처할 전망이다.

앞서 한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20일 한·일 정상회담이 미정인 상황에 대해 "30분 전이라도 (합의되면 정상회담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친구 간 번개 모임도 그렇게 잡진 않는다"며 "경솔한 발언"이라고 했다.

무산 위기에 처한 한·일 정상회담뿐 아니라 정부의 전반적인 G20 준비 상황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번 G20에서는 반(反)화웨이 캠페인 등 미·중 무역 전쟁, 이란 사태 등 우리 경제와 안보를 난타할 굵직한 국제 이슈들이 분출할 전망이다.

또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격 방북으로 미·북 비핵화 협상 판까지 요동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관심과 노력은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 성사 쪽에 쏠리는 듯한 모습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22일 주한 외교사절단을 인솔해 강원도 고성의 'DMZ 평화의 길'을 탐방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시 주석 방북의 함의와 비핵화 협상 전략을 정밀 검토하고 코앞에 닥친 G20 대책 마련에 분주해야 할 시점에 외교 수장이 한가하게 피크닉이나 다닌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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