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이주향의 내 인생의 책]⑤유마경 - 구마라습 역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마의 병든 몸

경향신문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것, 몸입니다. 갱년기를 지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는 사실, 어찌 그리 빠르게 변하고 무너질 수 있는지요.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데도 여기저기 힘이 빠지고, 열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그러고 나니 <유마경>에서 유마거사가 병든 대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인연 있는 중생 모두를 구제하고 있는 유마거사가 병석에 누웠다는 것도 신선했지만, 늙고 병든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병문안 온 사람들을 교화하는 부분에선 마음이 동할밖에요.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다 인색해지기만 한 우리들, 평생 건강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오로지 삶의 내용이 건강염려증인 우리들에게 유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몸은 물거품과 같아서 오래도록 지탱할 수 없는 것이고, 불꽃과도 같아서 갈애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몸은 그림자와 같아서 업연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며, 뜬구름과 같아서 잠깐 사이에 변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몸은 재앙이니, 101가지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몸은 언덕의 메마른 우물과도 같아서 늙음에 쫓기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몸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요? 질병에 시달리고 늙음에 쫓기는, 괴로움의 근원인 몸, 그러니 몸을 버리라가 결론은 아닙니다. 결론은 평생 ‘나’와 함께한 몸의 품성을 이해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소멸해가는 자신의 몸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병에서 허무를 보고 자유를 만지고 있는 유마거사의 몸은 유마 내면의 등불의 기름이겠습니다. 잘 나이 든다는 것은 병과 늙음을 감당하는 것이고 사그라드는 것을 배우는 것이겠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