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연극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에 출연하는 배우 박웅ㆍ손봉숙.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 세대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작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답을 듣기 위해 지난 17일 오후 서울 동소문동 연습실을 찾아가 두 사람을 만났다. 연기 경력 각각 56년(박), 43년차(손)인 이들의 명료한 발성이 지하 연습실을 쩌렁쩌렁 채우고 있었다.
‘이름없는 …’는 극단자유의 김정옥 예술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을 했던 작품이다. 20세기초 구한말을 배경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는 사당패의 이야기를 통해 부패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최치림 극단자유 대표가 연출을 한다. 배우들은 모두 사당패 광대 역할로 등장해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 양반에게 착취당하는 천민의 신세 등 다양한 이야기를 극중극 형식으로 재현해낸다.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1986, 87년 출연진들. 박웅ㆍ안숙선ㆍ국수호ㆍ오영수ㆍ김금지ㆍ유인촌ㆍ손봉숙(왼쪽부터)이다. [사진 극단자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손봉숙은 광대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광대들의 춤과 노래, 재담과 연기가 핍박받는 민생들을 위로하고 삶의 윤활유가 돼준다”며 “작품을 초연했던 1980년대나 지금이나 그런 효과는 여전히 먹힌다”고 장담했다.
부질없고 허무한 인생의 속성도 ‘이름없는 …’가 강조하는 요소다. 극중극의 시작과 끝이 모두 ‘광대의 죽음’이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를 웃게 만드는 ‘다시래기’ 풍습도 보여준다. 박웅은 “죽음을 무서운 것으로 그리지 않고 삶의 한 과정으로 풀어낸다”며 “무대 위 죽음이 현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짚었다.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연습 중인 배우 박웅. [사진 극단자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름없는 …’ 역시 한국연극으로서의 정체성이 선명한 작품이다. 이들은 “품바ㆍ사물놀이ㆍ마당놀이 등의 요소가 고루 포함돼 있다”(박)며 “이런 우리 연극 스타일이 후배 배우ㆍ연출가에 의해 이어지고 발전했으면 좋겠다”(손)고 말했다.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연습 중인 배우 손봉숙. [사진 극단자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연극계의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박웅은 “연극의 입지가 더 좁아진 것 같다. 연극이 우리 문화 속에 정착하기도 전에 영상ㆍ인터넷 매체가 장악해버렸다. 예전엔 초등학교에서 1년에 한 번씩 학예회를 열어 강당에서 연극을 하곤 했는데 그것마저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의욕은 변함없다. “오직 살아있는 무대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소리와 연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끝까지 파고들겠다”는 손봉숙이 ‘이름없는 …’ 의 대사 한 대목을 읊으며 이들이 추구하는 ‘배우론(論)’을 펼쳤다.
“광대란 원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거야. 우선 제 쌍판을 제 것이라고 소유할 필요가 없어. 제 것이 아닌 모든 가면을 갖기 위해서 제 것을 가지면 안 되는 거야.”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