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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성락원은 처음부터 문화재감이 아니었다"…김영주 의원이 찾아낸 1983~92년 전문가 검토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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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이 작성한 ‘성락원 조사보고서’에 실린 성락원 송석정.|김영주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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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원은 이미 1980년대에 문화재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 바 있다.’ 조선 철종시대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며 의친왕의 별궁으로 쓰인 200년 조선의 비밀정원이라는 이유로 명승 제35호로 지정된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김영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1983년과 1992년 문화재 전문가의 검토의견은 ‘성락원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국가지정 문화재(사적·명승)로 지정됐는지 알 수 없다”고 20일 밝혔다. 김영주 의원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성락원 자료에 따르면 1983년 9월30일 당시 문공부의 ‘지방문화재 지정 권고’에 따라 현장조사를 벌인 전문가 3명이 “성낙원은 지방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는 검토의견을 냈다. 당시 현장을 조사한 김영상·주남철·윤국병 위원이 낸 검토의견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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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의 ‘성락원 조사보고서’ 내용. “영벽지 주변은 보존가치가 있지만 다른 부분은 심하게 가치가 상실되었으므로 ‘서울시에서 보존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사자 의견이 실려있다. 국가지정보다는 서울시지정문화재로서 검토할만하다는 것이다.|김영주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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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원 본체는 원형이 거의 변형 및 개조되어 있으며 송석정 역시 창덕궁 앞 옛 국악원 건물을 이곳에 옮겼다고 전하나 이전건축 당시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양식이 결여되었고 암벽 각자 4곳도 추사체라고 전하나 이곳과 추사와의 역사적인 연계성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현재로서는 지방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전문가 검토의견은 성락원을 다시 국가문화재(사적)로 지정한 1992년에도 비슷하게 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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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성락원의 문화재 지정 중 한 이유로 ‘의친왕의 별궁’인 점도 고려했다. 그러나 1992년 보고서에는 “의친왕의 별궁으로 전해지지만 60여년전 재축되어 그 원형을 알 수 없다”면서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55년 재축한 것”이라고 적시해놓았다. |김영주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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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김영주 의원이 입수한 1992년 당시의 ‘성락원 조사보고서’에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이 보고서에는 ‘성락원은 각자(ㄱ)가 되어있는 영벽지 주변은 보존가치가 있으나 기타 부분은 건물신축, 조잡한 조경 등으로 심히 크게 변형되어 국가지정 가치가 상실됨’이라고 돼 있었다. 해당 보고서는 1992년 3월9일 3명의 문화재 전문위원(김주태·윤홍로·문영빈)과 문화부 문화재관리국 공무원 2명이 조사한 것으로 돼 있다. 보고서는 “다만 각자(ㄱ) 부분은 원형을 보존하고 주변을 정비하여 보존하는 방안을 서울시에서 검토하는 것이 좋겠음”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 말은 성락원의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국가지정 문화재로써 가치가 없으니 지자체가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락원의 내부에 위치한 정자 ‘송석정’은 한식목조와가로 1953년에 건립된 누각”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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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문공부의 지방문화재 지정 권고에 따라 현장을 방문한 전문가들이 낸 검토의견. ‘현재로서는 지방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고 못박았다.|김영주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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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락원’의 본체 건물은 “의친왕의 별궁으로 전해지나 60여년 전에 재축되어 그 원형을 알 수 없으며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1955년 경 심상준이 24칸으로 재축”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1950년대에 만들어졌고 주변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국가 문화재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또 “성락원에 ‘조선시대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기거했다’는 주장 또한 당시 성락원 소유자 측이 자필로 쓴 내용 외에는 별다른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최근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성락원에 기거했다는 조선 철종 시대 이조판서 심상응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을 밝혀낸 바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명승 제35호 성락원은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설명하고 있다. 김의원은 “‘철종시대의 이조판서 심상응 기거설’은 당시 성락원 소유자의 근거없는 주장을 문화재관리국이 검증없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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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원의 소유주가 운영하던 회사였던 한국수산개발 공사가 사용하는 종이에 자필로 작성한 문서가 ‘성락원 조사보고서’에 첨부됐다. 김영주 의원은 “성락원 소유자의 근거없는 주장을 문화재관리국이 검증없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김영주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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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이 입수한 ‘성락원 조사보고서’의 첨부자료를 보면 성락원의 소유주가 운영하는 회사였던 ‘한국수산개발공사’가 사용하는 종이에 자필로 작성한 문서가 첨부돼 있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성락원의 연혁을 기술하면서 ‘철종 때 심상응 이조판서 기거’라 돼있다. 따라서 ‘심상응의 별장설’도, ‘의친왕의 별궁설’도 근거가 없거나 이미 원형을 잃어버린 설명인 셈이다. 김영주 의원은 “이를 종합하면 성락원은 이미 1983년부터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정받았던 셈”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런데도 1992년 8월13일 당시 문화재관리국장이 작성한 ‘국가문화재(사적) 지정조사 보고서’에는 앞서 조사된 내용은 모두 빠진 채 ‘조선 별서조원의 유일한 명소가 될 것’이라며 문화재 지정 필요성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성락원은 일사천리로 사적(제378호)으로 지정됐다가 2008년 문화재에 ‘명승’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나다”며 명승(제35호)으로 문화재 항목이 바뀌었다. 김영주 의원은 “1992년 당시 이미 ‘지방문화재감도 안된다’는 1983년 자료를 참고했음에도 어떻게 사적지정이 강행되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라면서 “문화재청이 철저히 조사해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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