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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생(生)맥주는 뭐가 살아있는 맥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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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19)
중앙일보

뽀얀 거품이 부드럽게 깔린 생맥주는 따르는 모습만 봐도 침이 절로 꼴깍 넘어간다. 그런데 생맥주는 왜 생맥주라고 부르는 것일까? 시원하기 때문에? 무언가 살아있기 때문에? 놀랍게도 보통 우리가 접하는 생맥주와 진짜 생맥주에는 차이점이 있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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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황금빛 액체 위에 소담스럽게 올라앉은 하얀 거품. 한 모금 쭉 마시면 마음까지 뻥 뚫리는 시원한 생맥주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생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앉으니 갑자기 궁금해진다. 생맥주는 왜 생(生)맥주라고 부르게 됐을까? 무엇이 살아있다는 것일까? 신선한 맥주라는 의미인가?

맥주의 네 가지 재료인 맥아, 효모, 물, 홉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은 효모다. 효모는 단세포 미생물로 무산소 호흡을 하면서 당을 흡수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발효를 한다. 효모의 종류는 수백 가지로 다양하며 맥주 스타일마다 사용하는 효모가 달라진다. 원칙적으로 완성된 맥주에 살아있는 효모가 남아 있을 때 생맥주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생(生)맥주는 없다
과거에는 효모가 남아있는 맥주를 생맥주라고 불렀다. 그런데 맥주에 활동하는 효모가 들어있는 채로 오랜 시간 유통하면 어떻게 될까? 계속 발효가 진행되면서 맥주 양조자가 기대하지 않았던 맛이 나타날 것이다. 또 발효를 마친 효모가 찌꺼기처럼 둥둥 떠다닐 수도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현대에 들어서는 효모가 남아있는 맥주는 거의 유통하지 않는다.

대기업 맥주 회사는 맥주 맛을 유지하면서 유통하기 위해 저온살균(Pasteurization)으로 효모의 활동을 중단하거나 효모를 여과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이 과정으로 우리가 마시는 맥주는 공장에서 출고된 상태에서 더는 발효가 진행되지 않고 효모 찌꺼기도 남아있지 않다.

이렇게 완성된 맥주를 케그(대부분 20ℓ 용량)에 담거나 병, 캔에 담아 유통한다. 케그에 담긴 맥주는 맥줏집에 공급되는데, 우리가 생맥주라고 부르는 맥주가 바로 케그에 담긴 맥주다. 결국 같은 맥주인데 포장 용기만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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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그의 모습. 맥주는 대부분 20ℓ 용량의 케그에 담아 유통한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이 맥주를 생맥주라고 부른다. [사진 신한케그]




수입 맥주도 대기업 제품은 저온살균이나 여과를 거쳐 효모가 제거돼 있다. 칭다오 퓨어 드래프트, 삿포로 드래프트 원 등은 열처리를 하지 않고 여과 과정을 거친 맥주다. 일부 여과하지 않은(Unfiltered) 수제맥주가 수입되지만 역시 효모는 활동을 멈춘 상태다. 국내 수제맥주 중 필터링, 저온살균을 하지 않는 맥주들이 있다. 유통하지 않고 맥주를 만든 곳에서만 판매하는 맥주들이다. 이 맥주들이야말로 진정한 생맥주라고 부를 수 있다.

또 살균, 여과하지 않는 영국의 캐스크 비어와 중국 칭다오 맥주 공장 인근에서만 판매하는 원장(原漿) 맥주 역시 효모가 그대로 들어있는 생맥주다. 살아있는 효모가 들어있기 때문에 먼 곳까지 유통할 수 없어 지역을 한정해 판매한다. 칭다오 원장 맥주의 경우 1ℓ 캔, 5ℓ 미니 케그로 판매되는데 유통기한은 단 7일이다.

생맥주는 서빙하기 나름
케그로 유통되는 맥주는 살아있는 맥주는 아니다. 하지만 병, 캔보다 생산된 지 얼마 안 된 맥주를 먹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선한 맥주라고 할 수도 있다. 케그를 한번 오픈하면 최대한 빨리 소진해야 맛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그에 들어있는 맥주 자체는 병맥주, 캔맥주 과와 같지만, 케그 맥주는 파는 집마다 맛이 다르다. 여러 과정을 거쳐 맥주가 케그에서 잔으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맥주 맛의 격차가 생긴다.

케그의 보관 온도, 탄산압 조절, 라인 청소 여부 등에 따라 맥주 맛이 결정된다. 먼저 케그가 냉장 상태로 보관된 곳에서 맛있는 맥주를 먹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랫부분에 케그 냉장시설이 붙어있는 케거레이터(kegerator)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냉장고인 워크인(walk-in)을 운영하는 맥줏집에서는 케그를 냉장 보관하기 때문에 맥주 맛이 상대적으로 덜 변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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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맥주가 나오는 꼭지(위)와 생맥주 꼭지 뒤편에 위치한 워크인 냉장고(아래)의 모습. 케그 맥주는 공장에서 나올 때는 같지만, 파는 집마다 맛이 다르다. 보관 온도, 탄산압, 라인 청소 여부 등에 따라 같은 맥주도 맛이 천차만별이다. 보통 시원하게 보관하고 라인 청소를 깨끗하게 하는 가게의 맥주 맛이 좋다. [사진 황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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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을 어느 만큼 주입하느냐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케그에서 탭으로 맥주를 끌어올리기 위해 탄산가스를 활용한다. 대부분 맥줏집에서는 맥주를 공급하는 도매상 등이 설정해주는 탄산 압력을 바탕으로 맥주를 판매하지만 일부는 재설정해 탄산량을 조절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 맥줏집들을 취재했을 때 같은 맥주인데도 맥줏집마다 탄산감이 다른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한 맥줏집 대표는 “탄산이 많아야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며 탄산을 많이 주입한다고 했다.

맥줏집의 맥주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느냐다. 케그에서 탭까지 이어지는 구간에는 맥주의 단백질 성분이 누적돼 미생물 오염의 온상이 된다. 오염이 되면 맥주에서 신맛, 버터맛, 유제품맛 등이 나타나게 된다. 생맥주 시스템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성북구 F64에서는 일주일에 3회 이상 맥주가 지나가는 라인을 분리해 청소한다고 한다. 라인 청소가 쉽지 않은 만큼 이를 대행해주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진짜 살아있는 생맥주를 시중에서 구해 마시기는 쉽지 않지만, 생맥주 시스템 관리를 잘하는 맥줏집을 골라 가는 것은 가능하다. 같은 생맥주라도 관리 정도에 따라 각각 천상의 맛과 지옥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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