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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직장인 레시피] 회사가 당신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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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항상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다. 그 칼 자체로도 조직을 운용하는 무기가 되지만 가끔은 그 칼을 조직원에게 꺼낼 때가 있다.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구조 조정이 아니라도 핀셋으로 콕 집어 ‘잡초’를 제거하는 경우다. 남의 일이라고? 회사가 보는 ‘조직에 필요한 직장인’과 당신이 생각하는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과의 간극은 생각보다 넓고 교집합은 의외로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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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나 상사의 ‘데스 노트’를 감지하라

사실 경험자만 알 수 있다. 무엇을?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모험심 강한 선배들에게서 한두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 밝은 미래를 꿈꾸며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간 선배들도 만나 봤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만난 선배들은 그래도 최소한의 ‘모양새’가 가능한 선배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실패와 좌절의 구덩이에서 또 다른 재기를 꿈꾸는 선배라면 당신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다. 소주 한 잔 앞에 놓고 그들은 말한다.

“야, 있을 때 잘해. 괜히 나처럼 나오지 말고.” “그래도 월급봉투 꼬박꼬박 나올 때가 좋은 거야.”

그래도 자발적 퇴사를 선택한 선배와 동료들은 자신의 지금에 후회와 원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밀려난다면, 잘린다면…. 이건 답이 없는 문제지를 푸는 꼴이다. 회사와 직원, 상사와 부하 직원이 영원히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낼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그나마 직장 생활의 지속성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공시생’들은 그 좁은 문을 뚫기 위해 오늘도 볼펜으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밤을 새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서 보고 듣는 것들, 일테면 누군가의 승진, 구조 조정, 좌천 등등. 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다. 순서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내 앞에 닥칠 선택의 순간이다. 이것에서 예외일 수 있는 직장인은 없다. 오너의 처조카쯤 되거나, 혹은 회사의 명운을 건 프로젝트를 성공시켰거나, 아니면 비겁하고 치사하지만 누군가의 은밀한 사생활 비밀을 알고 있지 않다면 모두 나의 일이다. ‘능력이 있으니까 나는 괜찮다’는 역시 순진한 발상이다. 당신이 발휘하는 능력 수준을 갖춘 직장인을 일렬로 줄 세우면 회사 건물을 몇 바퀴 돌 정도로 많다. 회사는 딱 당신 수준의 능력자들을 뽑아 훈련시키고, 교육시키고, 또 써 가면서 그 능력 이상의 성과를 원하기 때문이다. 매년 수백 명의 ‘인재’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 바로 회사다. 또 ‘나는 운도 좋은 편이고, 상사나 부하들이 다 좋아하는 원만한 성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정말 대책이 없다. 회사는 가족이 아니다. 당신이 받은 월급은 ‘당신 능력의 기준’이다. 하지만 회사는 그 만큼의 성과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100원을 주면 1000원의 값어치를 기대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켰을 때 승진과 보너스로 보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수와 실패를 한다면 회사는 100원도 아깝다고 판단한다. 그 순간부터 회사는 ‘어떤 방법으로, 어떤 이유로’ 당신을 이 건물에서 내보낼지 체크하게 된다. 회사는 ‘직원을 내보내기 위한 매뉴얼 북’을 갖고 있다. 그 매뉴얼 북에는 그야말로 100가지가 넘는 체크 포인트가 있다. 이 촘촘한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절대 없다. 그래도 기회는 있다. 당신의 마지막 출근이 내일 혹은 당장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몇 개월의 시간은 당신에게 주어진다.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만회하고, 변화하고, 성과를 내고, 하다못해 실세의 바지라도 잡고 늘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평범은커녕 둔감해서는 안 된다는 점. 회사가, 상사가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야 한다. 회사는, 상사는 일정 기간 당신의 모든 것을 체크하고 그것을 토대로 ‘데스 노트’를 작성한다. ‘나는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하지 말자. 그럴수록 ‘데스 노트’의 당신 이름은 더욱 굵어지기 때문이다. 회사나 상사가 당신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당신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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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근태를 체크하지 않는다

상사가 제일 싫어하는 직원은 바로 근태가 불성실한 직원이다. 특히 지각은 단순히 몇 분 늦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출근 시간은 회사와의 약속이다. 9시 정각 땡 하고 출근하는 것은 회사나 부서에 대한 당신의 ‘열정과 충성심’ 부족을 드러내는 징표다. 최소 출근 시간 20분 전에는 사무실에 와 그날의 업무를 준비해야 한다. 9시 혹은 10분쯤 늦게 출근해 커피 뽑으러 나가고, 탕비실에 가 잡담 좀 하고, 컴퓨터를 켠 다음 30분 정도 인터넷 서핑하는 습관들. 부서원이 다 그럴 거라고 예단하지 말라. 만약 모두 당신과 비슷한 패턴으로 일을 한다면 그 회사는 내보내기 전에 ‘당신이 먼저 나와야 할 회사’다.

지각은 습관이다. 지각하는 직원들이 항상 지각한다. 그것도 꼭 5분에서 15분 정도다. “죄송합니다. 좀 늦었습니다”라며 자리에 앉지만 상사는 이미 미간을 찌푸리고 당신을 지켜볼 것이다. 그러고 그는 생각한다. “10분만 일찍 일어나도 될 것을, 저 친구는 아주 습관이군.” 그래도 당신의 지각에, 나름 예의를 갖춘 지각 인사에, 상사가 반응을 보인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그래, 좀 늦었군” “좀 일찍 오지 그래” “어이, 박 대리! 더 이상 지각하면 인사 고과에 반영할 거야” 등등의 리액션이다. 그것을 마지막 관심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그 못된 습관을 고쳐야 한다. 더 이상의 핑계거리를 찾지 말아야 한다. ‘버스를 놓쳐서’ ‘길이 너무 막혀서’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부서원 모두, 상사 역시 그런 버스, 지하철을 타고 수십 년을 출근한 경력자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사의 반응이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도 10분 늦게 사무실에 도착해 우물쭈물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데, 부장이 쳐다보지도, 아무런 말도 없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 당신은 상사의 이런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상사가 나를 이해하나?’ 혹은 ‘그래, 내가 집이 먼 것을 알아주네’라며 100% 자기 위주로 판단하지 말라. 그것은 일종의 악플도 아닌 무플이다. 무플의 무서움은 연예인만의 것이 아니다. 상사는 그 순간부터 당신의 근태를 ‘치료 불가능한 불성실’로 이미 인사 평가서에 기재를 끝낸 것이다. 물론 출근 시간 체크만이 아니다. 당신의 근무 태도, 점심 시간, 퇴근 시간 등도 모두 당신도 모르게 상사는 다 체크하고 있다. 두 시간 가까운 점심 시간의 여유, 동료 혹은 후배들과 오후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나누는 30분 정도의 한담, 퇴근 시간이 되면 슬슬 눈치 보다가 10분 정도 지나서 퇴근하는 것, 외근 나가서 오후 4시쯤 ‘현지 퇴근하겠습니다’라는 전화 보고 등도 상사의 눈에는 ‘모두 근무 태만’이다. 직장인의 인사 고과에서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항목이 바로 ‘근태’다.

여기서 점수를 잃는다면 다른 어떤 성과를 내고 당신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더라도 A급 인재로 평가 받기는 불가능하다. 혹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상사들이 꼰대라 아직도 성실도만 갖고 인사 평가를 하나’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어떤 능력도 성실과 부지런함을 이기지 못한다. 비유하면 근태는 적금이다. 매일 1000원씩 적금을 넣는 것이다. 지금은 큰돈이 아닐지라도 몇 년 지나면 목돈이 된다. 그 돈은 당신이 위기에 빠질 때 유용하게 꺼낼 쓸 수 있는 비상금이 되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한 두 명의 직원, 이 중에서 한 명을 구제할 때 그 어떤 것보다 ‘근태’에서 적금을 들었다면 구제 대상은 바로 그 직원이 될 것이다. 상사나 선배가 보내는 경고 메시지를 결코 무시하지 마라. “지각 좀 그만 하지.” “30분 일찍 일어나면 되지 않나?”라는 말을 그저 스쳐가는 참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지각과 마찬가지로 일찍 출근하는 것도 습관이다. 다른 점은 ‘나를 방어하는 아주 좋은 습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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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나 부서의 어려움을 나에게 말한다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편에서 정 과장(정준하)이 해고 대상이 되었다. 유 부장(유재석)은 그를 데리고 회전 초밥집에 가서 마음껏 먹으라고 한다. 눈치 없는 정 과장, 무려 수십 접시를 ‘클리어’한다. 마지막 성찬일 것이다. 그리고 회사로 들어온 정 과장은 동료들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신의 책상이 정리된 것을 본다. 정리 해고의 순서다. 그 전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상사가 자꾸 회사와 부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경우다. 유 부장도 마찬가지다. 사장에게 “더 이상 실적을 내지 못하면 부서를 없애겠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부서원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유난히 나에게, 당신에게 상사가 고충을 털어놓는다면 그것은 두 가지 의미다.

첫 번째는 당신과 상의하는 것이다. 부장이 차장이나 고참 과장에게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부서 운영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고충 해결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직장 상사의 대화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부서원 모두가 공유할 수 없는 회사의 전략과 방향성을 알려주고 솔루션을 구하는 것, 그리고 부서원 누군가에 대한 평판을 확인하는 것이다.

“정 과장, 회사에서 내년부터 국내 영업부는 통합하고 해외 영업에 중점을 두기로 했어. 지금 영업부가 두 개인데… 통합되면 우리 1부가 주축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론 실적이 중요하겠지만, 방법을 생각해 봐!”

“정 과장, 그냥 묻는 말인데, 박 대리는 어떤 것 같아. 근태나 주위 평판, 성적이 괜찮은 편인가? 나는 그 친구가 조금 아쉬운데. 주변에서는 뭐라는 것 같아?”

이런 류의 대화를 부장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아직 유용한 부서원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당신을 해고 대상으로 정하고 회사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빠르게 감지해야 한다. 부장의 결심을, 그 위의 선택을 뒤집지는 못하더라도 만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이다. 부장은 대개 이런 식으로 말한다.

“박 대리, 참 난감하네. 회사에서는 영업부를 무조건 통폐합하라 하고.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영업부가 합쳐지면 부서원들 이동도 있을 것 같아. 우리 부서는 다치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영 정보도 없고, 막연하네. 설사 알아도 힘이 없으니.”

“박 대리, 자네는 회사 생활 어때. 참 와이프는 아직 그 회사 다니지? 그래도 박 대리 아직 젊으니까 기회가 있겠지. 나는 이 나이에 회사에서 나가면 할 게 없어. 회사만 보고 한눈 안 팔고 다녔는데… 애도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뭐 어떻게 되겠지. 회사에서 나가라면 나가야지 뭐. 직장인이 다 그렇지. 내 회사도 아닌데 내가 다니고 싶을 때까지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상사의 이런 이야기는 이미 당신을 데스 노트에 올려놓겠다는 뜻이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한다. 상사에게 상황에 대해 솔직히 질문하고 그래도 ‘방법’이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회사는 한두 명의 정리 해고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조직 전체에 보내는 경고 시그널이다. 물론 순간의 위기를 천우신조로 넘겨도 당신의 주홍 글씨는 안 지워지겠지만, 회사에는 시기를 늦출 권한이 있다. 그 권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조건이라도 제시하라. 가시적인 성적을 내겠다는 약속도, 그래도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면 연봉 동결 또는 감액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어떤 이유든 ‘나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근태 적금’ 부분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것조차 없다면 담담히 받아들이고 몇 개월의 시간이라도 벌어야 한다. 정리 해고보다는 자진 사퇴 형식이 당신의 인생 2차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살갑지 않던 상사의 적극적인 대화, 회사와 부서의 어려움 토로 그리고 당신의 현재 경제적 형편을 질문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이미 위험 수위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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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비를 체크하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눈먼 돈은 없다.’ 특히 회사에서 지급하는 당신의 것, 일테면 월급, 특근비, 수당, 보너스 역시 그만큼의 성과를 바라고 지급하지만 그 외의 것은 ‘당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관례적이지만 관례는 ‘원칙과 법’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그 적용 범위는 매우 탄력적이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마음을 놓기 쉬운 부분이 바로 법인 카드, 부서 진행비, 업무 추진비 등이다. 이 비용들은 일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비에 관한 재량권을 일정 요건을 갖춘 직원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많은 시간 동안의 경험과 통계가 바탕이 된다. 영업부는 한 달에 어느 정도 비용을 쓰는지, 부장급, 임원급은 품위 유지와 업무 진행을 위해 어느 정도가 필요한지 등 회사에서 그 가용 부분에 대한 점검이 끝난 것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한도가 100만 원인 법인 카드는 한 달에 100만 원을 쓰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단 10만 원만 쓰고 90만 원을 아꼈다고 해도 회사는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 안 하는 직원’ 취급한다. 그렇다고 가시적인 성과 없이 매달 100만 원을 꼬박꼬박 쓰는 직원도 ‘회사 돈 우습게 아는 직원’으로 찍힌다. 한도는 성과에 비례한다. 100만 원을 쓰는 것은 1000만 원의 성과를 낼 수 있을 때 쓰는 것이다.

진행비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을 했는지 명확치 않은 영수증만 A4 용지에 다닥다닥 붙여 제출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언제, 누구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가 기록되어야 하고, 그 기록은 부서장과 회계 파트에서 다 성과로 점검한다. 법인 카드를 처음 받으면 다들 조심해서 쓰게 된다. 첫 달은 아껴 쓰고, 회사에서 정한 규정에 따른다. 그러다 몇 달 지나면 좀 더 쓰게 된다. 범위는 넓어지고 단위가 커진다. 내역서 제출하고 ‘혹시 상사나 회계 파트에서 지적이 있을까?’ 마음 졸이다가 그냥 넘어가면 ‘아, 그래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러면서 회사 일이 아닌 것에도, 집 근처에서, 휴일에도 마음 놓고 카드를 쓴다. 이 같은 과정이 ‘나를 망치는 순서’인 것이다. 모 회사의 실제 이야기다. 이 회사는 평소 법인 카드 내역을 일일이 체크하지 않았다. 카드 한도도 크다. 그러자 직원들은 법인 카드로 돌아가면서 회식도 하고 개인적인 용도로도 쓰는 것을 관례처럼 여기게 됐다. 갑자기 회사에서 몇 년 치 법인 카드 내역서를 정리해 개별 면담을 했다. 물론 부서를 지정해 부서원 전원을 체크하지만 목적은 따로 있다. 회사에는 그동안 근태, 성과, 인사 고과 등을 토대로 정리 해고 명단을 작성한 뒤, 별도의 무기로 법인 카드, 진행비 내역서를 면밀하게 분석해 이를 눈앞에 내민다고 한다. 정리 해고 이야기가 오고 가면 완강하게 거부하거나, 읍소하는 직원도 ‘돈 문제’를 들이대면 대개 고개를 숙이고 만다.

치사하다고? 이는 당신의 낭만적인 생각이다. 회사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준다고 생각한다. 월급 주고, 밥값 주고, 아이들 교육비 주고, 특근비, 야근비, 조기 출근비 주고, 또 활동비에 복지 포인트도 주고, 보너스도 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급자 위주지만 그만큼 그들의 ‘이름값과 성과’를 내라는 뜻이다. 모 금융사 이야기다. 지사에서 생각하는 본부 감사 중 제일 무서운 것이 법인 카드나 진행비 감사라고 한다. 업무 감사는 좀 시달리면 되지만 본부에서 “감사 나갑니다. 법인 카드 내역서 준비해 주세요”라는 말이 떨어지면 본능적으로 “이번 감사는 목적이 있네. 누가 다치겠구나!”라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사실 이 정도의 이야기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은 왜일까? 이는 제일 손쉽게, 무심하게, 관례적으로 생각했다가 ‘걸려들기 쉬운 항목’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망각과 착각 그리고 자기 편의적이다. 자신의 행동과 말에 자꾸 ‘합리적 혹은 당연’하다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본능이 있기에 실수가 반복되는 것이다. 어느 날 상사가 법인 카드나 진행비를 지적하면 고맙게 받아들여라. 그리고 합당한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추후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한다. 만약에 상사가 아닌 회계나 감사팀에서 당신을 호출해 이 부분을 지적하면 이는 ‘이미 늦은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사나 선배의 지적은 ‘아직은 당신 실수와 방만의 기록’이 넘어가지 않은 단계다. 잊지 말아야 한다. ‘돈은 다 이름이 있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항상 증빙 서류를 챙기고, 메모도 해 두어야 한다. “억울합니다. 제가 그 돈을 개인적으로 쓴 건 아니잖아요. 노느라고 쓴 것도 아니고요”하고 항변해 봤자 소용없다. ‘숫자를 이길 수 있는 논리는 없다.’ 평소 자신에게 엄격하고 치밀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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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이 나와의 시간을 피하기 시작한다

‘자기 집 바가지 새는 것 내가 제일 늦게 안다’는 말이 있다. 직장에서 정보통으로 소문난 직원도 자신에 관한 평판은 오히려 자신이 제일 모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점심 시간, 퇴근 후 동료나 후배들과 한 잔 하면서 상사 뒷담화도 즐겼다면, 지금도 그런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혹시 동료나 후배들이 어느 날부터 당신과 만나는 시간을 줄이거나, 당신의 열띤 대화에 참여치 않는다면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건 당신을 제외한 모든 부서원이 ‘당신의 무서운 미래’를 공유했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 당신이 정리 해고 대상이 되거나, 예비 명단에 올라 있다면 부장은 이를 차장에게, 차장은 이를 자신을 따르는 몇몇 직원에게 넌지시 이야기했을 것이다.

“앞으로 정 과장과의 자리는 줄이는 게 좋을 거야. 암튼 그렇게 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왜요?”라고 질문하는 직장인은 없다. 무슨 말인지, 어떤 뜻인지 이미 찰떡같이 알아듣기 때문이다. 비밀 아닌 비밀이 바로 이런 경우다. “너만 알고 있어. 비밀이야”는 이미 비밀이 아니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부서원은 미래에 벌어질 당신의 부재를 이미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부서원들끼리는 누가 당신의 업무를 ‘커버’해야 할지 정했을지도 모른다. 만남이나 대화만 줄이는 것이 아니다. 상사가 당신에게 지시하는 업무의 양도 서서히 줄어들 것이며, 일의 비중 역시 “아니, 이런 일을 고참인 나에게 맡기나?” 할 정도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큰 잘못이 없다고, 아직도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고? 그렇다면 생각의 방향을 바꿔 보자. 당신이 그동안 동료들과 나눈 대화들 속에서, 그들의 열렬한 호응에 오버해 상사를, 임원을, 회사를 그야말로 ‘난도질’하지 않았는지 복기해 봐야 한다. 하물며 좋은 소리도 열 번 들으면 식상한 것이 세상사는 이치다. 그런데 매번 상사의 뒷담화를 당신이 도맡았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살 행위’다. 그 즐거운 술자리의 모든 동료와 후배가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들만의 생각과 기준은 따로 있다. 상사들은 부서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항상 체크한다. 부장급 이상의 승진 기준에서 성과나 능력, 임원들의 평가 못지않게 중요한 항목이 바로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이 리더십은 부하 직원들의 평판이다. 그 평판을 체크하기 위해 상사는 당신뿐 아니라 동료나 후배들과 골고루 별도의 시간을 ‘당연히’ 갖는다. 그 자리에서 상사는 격려와 조언 그리고 은근한 약속을 한다. 인간은 받으면 갚아야 하는 것. 상사와 단 둘이 마주한 동료와 후배는 생각한다.

‘부장님이 박 대리, 김 대리, 이 사원하고도 이런 대화를 하겠지. 그 자리에서 나에 대해서도 물어보겠지. 그런데 정 과장이 부장님 뒷담화 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먼저 이야기하면 나는 동조한 꼴이 되잖아.’

이렇게 생각이 넘어가는 순간, 동료와 후배는 부장의 노련한 되치기에 이미 걸린 것이다. 물론 그 동료나 후배 역시 당신을 직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넌지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운을 떼겠지만 부장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좀 더 확실한 물증을 갖고 ‘정 과장의 뒷담화’를 ‘팩트 체크’ 하는 것이다.

“박 대리, 다 알아. 그래 뭐 임금님도 없는 데서는 뒷담화하는데. 내가 뭐라고. 그래도 저번에 정 과장이 내가 진행한 여름 프로모션 건을 진부하고 비용만 많이 들었다고 비판한 것은 좀 아닌 거 아냐? 알잖아. 우리 부서 모두가 열심히 했고, 그래서 상무님도 격려해 주신 거.”

그 순간, 박 대리는 부장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야말로 ‘엔드 게임’이다. 모든 상황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자초하지 말자. 누군가를 비난하려면, 그 비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 술안주가 떨어져서 뒷담화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만 호기로울 뿐이다. 나중에 누가 나를 변절했고 배신했다고 원망하지 말자. 그들 역시 고의가 아닌 노련한 부장의 기술에 걸려서, 또는 그것이 조직이 유지되는 비공식적인 시스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서에서 외톨이가 되는 순간, 당신의 선택은 부장에게 면담 신청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최소한의 변명이라도 해야 한다. 업무나 회사의 구조적인 정리 해고가 아닌 부장의 괘씸죄에 걸리는 것, 가장 안 좋은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 대 일로 풀 수 있는 ‘1차 방정식’이기 때문이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4호 (19.06.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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