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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모델·화가·사교여왕 그리고 굴곡진 가정… 파란만장 95년 생애 마친 '철도왕 상속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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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밴더빌트 별세

미국 갑부 가문 밴더빌트가(家)의 상속녀이자, 패션 디자이너·작가·화가 등으로 활동했던 글로리아 밴더빌트(95)가 17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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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CNN 앵커인 아들 앤더슨 쿠퍼(왼쪽)와 함께한 글로리아 밴더빌트.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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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1924년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왕' 존 D 록펠러 등과 함께 미국 최대 부호로 일컬어지는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의 5대손으로 태어났다. 생후 18개월 아버지 레지널도 밴더빌트가 간경변으로 사망하자, 어머니는 글로리아와 유모를 데리고 파리로 떠나 화려한 파티를 즐기며 재산을 탕진했다. 보다 못한 글로리아의 고모가 1934년 글로리아의 생모와 양육권을 놓고 '세기의 법정 다툼'을 벌였고, 이때 언론은 글로리아에게 '가여운 부자 소녀'라는 별명을 붙였다. 결국 글로리아는 소송에서 이긴 고모의 손에 자랐다.

글로리아는 사교계를 주름잡으며 패션모델과 디자이너, 화가, 작가 등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70년대 '글로리아 밴더빌트 디자이너 진' 브랜드를 만들어 청바지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80년 매출이 당시 돈으로 2억달러(약 2373억원)에 달했다. WSJ는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진의 여왕이었다"라고 추모했다.

글로리아는 '마이 웨이'를 부른 프랭크 시나트라, 영화 '대부'의 말런 브랜도 등 당대 스타들과 염문을 뿌렸다. 찰리 채플린과도 친분이 깊었다. 네 차례 결혼한 그는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로 활동한 두 번째 남편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마지막 남편 작가 와이어트 쿠퍼 사이에서 각각 아들 둘을 낳았다. 막내아들이 CNN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다.

글로리아의 삶은 화려했지만, 굴곡도 컸다. 1988년 23세였던 셋째 아들 카터 쿠퍼가 정신 착란으로 맨해튼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렸고, 이를 저지하려 했지만 막지 못한 글로리아는 아들의 죽음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앤더슨 쿠퍼는 형의 자살을 계기로 거액의 유산을 거부하고 방송계에 입문했다.

17일 앤더슨 쿠퍼는 약 7분간의 방송을 통해 글로리아의 부음을 직접 보도했다. 쿠퍼는 "나는 어머니 생애 마지막 몇 주간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사랑해요, 엄마'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나도 너를 사랑해. 너도 알잖니'라고 답했다. 사실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었고, 죽는 순간까지 그것을 기억할 것이다"라면서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비범한(extraordinary) 삶을 살았고, 비범한 어머니였으며, 비범한 여성이었다"며 방송을 끝맺었다.



[뉴욕=오윤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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