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의 배경 '아스'는 가상의 지명. 아스달은 그 중심 도시의 이름이다. 그 아래 대흑벽은 쉽게 넘나들기 힘든 거대한 암벽이다.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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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과 제작진도 화려하다. 장동건·송중기·김지원·김옥빈 등이 주연을 맡았다. 극본은 김영현·박상연 작가('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선덕여왕'), 연출은 김원석 PD('미생''시그널''나의 아저씨') 솜씨다.
540억원으로 알려진 제작비 역시 국내 드라마 최고 수준.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개국에도 방영중이다.
'아스달 연대기'는 전체 18부작쯤 된다. 그 중 12부를 이번에, 나머지를 하반기에 방송할 예정.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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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이라는 가정으로 행간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두루 섭렵한 조선사는 환상이 자리 잡을 공간이 적고, 사료가 부족한 고조선이나 삼국, 고려의 이야기는 사실과 상상 사이 어딘가를 오가고 있다. 그렇다면 상고사는 어떠한가. 완벽한 신천지가 아닌가.
은섬(송중기)은 사람과 뇌안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이 드라마에서 '사람'은 종족 중 하나다.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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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에 걸었던 기대는 ‘다름’이다. 사극이 지금의 이야기에 시간의 옷을 입힌 것이라 하여도 거의 모든 것을 상상으로 채워야 하는 상고시대 이야기에는 예측하지 못한 ‘다름’이 있길 기대했다. 작가와 감독, 배우 모두 쟁쟁했고 제작비 또한 국내 최대 규모였으니 당연한 바램이었다.
타곤(장동건)은 문무를 겸비, 뇌안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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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말투에는 현대극과 사극이 교묘히 섞여 있고, 명료하지 않은 웅얼거림은 환상적이라기보다 몰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드라마를 위해 탄생한 뇌안탈족의 언어는 독특한 발성과 낯설음 덕분에 상고시대 분위기를 살려냈지만 뇌안탈족의 전멸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탄야(김지원, 가운데)은 와한족이자 씨족어머니의 후계자. 은섬과는 친구이자 연인이다.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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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스케일로 그려낸 웅장하면서도 몽환적인 자연과 생경한 풍경,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 등은 나름의 완성도가 있었음에도 제작비 500여억원이라는 사실이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거대 서사를 이끌어가기 위한 다양한 종족의 정체성과 각각의 관계를 이해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태알하(김옥빈)는 해족 부족장(조성하)의 딸이다. 타곤(장동건)과는 연인 관계다.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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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시대의 판타지를 표방한 '아스달 연대기'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인류의 신화를 새롭게 상상한다. 태고의 땅 ‘아스’를 중심으로 문명의 태동과 권력의 작동 그리고 국가의 형성 과정을 탐색하는 신화적 상상력이 흥미롭다.
이 드라마에는 여러 종족과 부족이 나온다. 저마다 특징이 다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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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언어와 생활 방식 모두 낯설어야 마땅한 극적 상황들은 기시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새롭고 낯선, 그래서 신비로워야 할 극적 상황들이 신기할 정도로 익숙하기까지 하다. 국가와 민족의 차원을 넘어 인류 문명의 기원으로 신화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 마이너스로 작용한 꼴이다. 초(超) 혹은 탈(脫) 국적의 방송 플랫폼 환경 변화를 염두에 둔 듯한 스토리텔링 전략의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타곤(장동건)은 아스달 연맹장인 아버지 산웅(김의성)과도 큰 대립과 갈등을 겪는다.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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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의 주인공들은 원시 부족의 신화 시대에서 문명 국가의 역사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다. ‘사람’으로 불리는 부족들의 연맹체 부대 수장 타곤(장동건)은 와한족들을 침략하여 전쟁 노예로 만들면서 아스달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사람과 뇌안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나 와한족의 손에서 성장한 이방인 은섬(송중기)은 폭력적인 문명 세력과 맞서면서 와한족의 영웅으로 성장한다.
타곤과 은섬의 대결은 문명의 야만성과 권력의 폭력성을 역설하지만,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관을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이 기존의 정형화된 영웅 이미지를 답습하는 인상을 남기는 것도 그래서이다.
은섬(송중기)은 아스달의 예언에 나오는 '푸른 객성'이 빛나던 날에 태어났다.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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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상고시대로 상상의 지평을 넓혀 한국 드라마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려 한 의도는 알겠으나,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로 시청자가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세계의 생경함에서 비롯한 신비로움보다 ‘대흑벽’ 같은 진입장벽이 가로막는 당혹스러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라고 해서 만듦새의 허술함을 그냥 넘기기 힘든 것도 그래서이다. 방영 전부터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아스달 연대기'의 향방이 여전히 궁금한 까닭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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