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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장석주의 사물극장] [102] 마더 테레사와 '사리 두 벌, 손가방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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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우리 시대의 가장 무서운 질병은 한센병이나 암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의 부족, 가난이나 다른 이유로 고통받는 희생자들에 대한 냉담과 무관심이다. 수녀 마더 테레사(1910~1997)는 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 세계에 헌신과 봉사의 씨앗을 퍼뜨렸다.

그는 알바니아 스코페(지금의 마케도니아 공화국 수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업가이자 시의원이었다. 1919년 어린 삼남매와 아내를 둔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어린 테레사는 언니와 가톨릭 교구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1928년 9월 26일 18세에 수녀가 되려고 고향을 떠났다. 이듬해에 '파견 수녀'로 인도 캘커타(콜카타의 옛 이름) 빈민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마더 테레사는 봉사를 '진정한 특권'이라고 여겼다. 봉사 활동을 더 효율적으로 하려고 '사랑의 선교회'를 세웠다. "우리 자매들이 행하는 일은 바다에 있는 물방울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물방울을 바다에 떨어뜨리지 않으면, 바다는 무언가 부족해질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물방울일지라도."

스페인에서 '사랑의 선교회' 첫째 집을 열었을 때 누군가 냉장고를 기증했다. 마더 테레사는 '자발적 가난'에 어긋나니 냉장고를 다시 가져가라고 부탁했다. "내 자매들을 맡기니, 늘 보살펴 주시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걱정 마세요, 수녀님.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마더 테레사는 '도움'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제발 부탁하건대 가난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마더 테레사는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수상 소식 뒤 각국 대통령과 총리에게 온 축하 전보가 '산더미'만큼 쌓였다. 하지만 가난을 존중하고 검소함을 추구하는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행하거나 이동할 때 늘 조그만 성모상이 든 싸구려 손가방 하나만을 가지고 다녔다. 사리(sari) 두 벌, 손가방 하나. 그 이상은 소유하지 않았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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